항목 ID | GC018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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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載亮 |
영어음역 | Nam Jaeryang |
이칭/별칭 | 한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 829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전인식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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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 829 |
성별 | 남 |
생년 | 1898년 2월 7일 |
몰년 | 1955년 11월 15일 |
본관 | 영양(英陽)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한익(漢翊).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후손으로 1898년 2월 7일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에서 남병선(南炳旋)의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남재량은 애국지사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강학하던 매화면 매화리의 만흥학교(晩興學校)에 재학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에 3·1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고무되어 4월 11일 매화리의 매화장날에 전병겸(田炳謙), 최효대(崔孝大) 등과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서 4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3·1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