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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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尙三- |
영어의미역 | Tale of Bae Sangsam |
이칭/별칭 | 「태하의 배상삼(裵尙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은희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배상삼의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첫 번째 이야기는 울릉도 개척 당시 전라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중에 키가 아홉 자[약 2.7m]나 되고 힘이 장사이며 용기가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아무리 큰 황소라도 어깨에 메고 걸어갔으며, 어깨 너머로 집어던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장사의 성은 ‘배’이며 이름은 ‘상삼’이었다.
배상삼은 항상 칼을 차고 다녔으며 재물이고 부녀자이고 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섬의 무법자였다. 기운이 세고 무서워서 섬사람들은 그를 장군·배 장군·태하 장군이라고 불렀다. 무섭고 귀찮아서 모두 슬슬 피하면서 가까이하지 않았다. 특히 부녀자들을 제멋대로 희롱하여 섬사람들은 어디 두고 보자고 벼르고 있었다.
또한 일본 배가 울릉도 근방을 다녔는데, 배 장군은 남모르게 일본인들에게 문서도 전해 주고 일본 군사도 보내 주면서 울릉도에 독립국을 세우고 왕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편지를 받은 일본 배는 파선이 되었고, 그 문서는 울릉도에 닿아서 배상삼의 일이 발각이 되었다. 섬사람들은 비밀리에 회의를 열어 모의를 하였다.
하루는 큰 잔치를 열어 배상삼을 초청하였다. 배상삼의 아내는 어젯밤 꿈이 흉몽이라서 좋지 않다고 남편에게 잔치에 가지 말 것을 간청했으나, 개꿈이라고 무시하고 잔치에 갔다. 결국 배상삼은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 죽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이 섬에 도둑과 횡포를 부리는 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배상삼은 대구 사람으로 본명은 배영준이었으나 울릉도에 이민을 와서 배상삼으로 개명하였다. 그는 동학 농민 운동에 연루되어 경상북도 울진에서 피신해 있다가 울릉도 개척령이 내리자 전재환 일가를 따라 울릉도에 오게 되었다. 배상삼은 성품이 활달하고 힘이 천하장사인 용맹스러운 사내였다. 홀아비로 섬에 와서 과수 권씨를 보쌈을 하여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순시차 입도한 평해군수겸울릉도첨사 조종성(趙鐘成)의 추천으로 도수가 되었다. 배 도수는 섬사람들에게는 공평무사하게 선정을 베풀었지만 왜인(倭人)에게는 호랑이같이 무서웠다. 한번은 왜인 20여 명이 거목을 도벌하려고 오자, 벼락같은 고함을 치며 닥치는 대로 20여 걸음 떨어진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는 배 도수의 신망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왜인들은 그를 멀리하여 폐단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왜인들의 등쌀에 피해를 입었던 섬사람들은 좋아했지만, 왜인들과 결탁하여 호의호식하던 인물들은 배 도수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가뭄이 극심하여 농작물이 말라 죽고 쥐와 새의 피해까지 겹쳐 끼니를 때우지 못하게 되자 섬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기만 하였다. 이때 배 도수는 부유한 사람들을 모아서 구휼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부자들이 모두 거절하자 곡간 조사를 하였고, 결국은 배 도수의 힘에 눌려 곡식을 내놓게 되었다. 그 곡식으로 섬사람들은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혜자는 배 도수를 생명의 은인으로 존경하였지만, 피해자들은 원수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왜인들은 배 도수의 위력 때문에 도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부자들은 상행위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대해 앙심을 품고 부자들과 왜인들이 결탁하여 암암리에 배 도수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동절기를 이용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려 개척민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자며 모의를 하였다.
그 내용은 배 도수가 왜인과 내통하여 개척민의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는 전부 왜인들의 처첩(妻妾)으로 팔려고 한다는 편지를 써서 길에 버렸던 것이다. 이 편지가 섬 전체에 유포되자, 이전에 구휼을 받았던 사람들까지 배 도수를 원수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8명이 거사 일을 정하고 모든 개척민들에게 서낭제에 참석할 것을 알렸다.
배 도수가 서낭제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출발할 때 아내가 극구 말렸으나 단도만 차고 출발하였다. 서낭제가 끝난 뒤 8명은 배 도수에게 불만을 터뜨리며 시비를 걸었고, 그 중 한 명이 배 도수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그것을 신호로 7명이 달려들어 일제히 방망이로 배 도수의 머리를 후려치는 동시에 각자 소지하고 있던 목침을 던졌다.
배 도수는 필사적으로 밖으로 달아났으나 앞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달아날 수가 없었다. 결국은 무차별적인 공격에 못 이기고 머리가 깨어지고 어깨가 부서지고 유혈이 낭자한 채 죽고 말았다. 시체는 그의 거주지인 저동리로 끌고 가서 화장하였더니 뼈가 모두 고리같이 얽혀 있었다고 한다.
배 도수를 암살 한 후에는 왜인들의 도발과 행패가 극심하여 개척민들은 온갖 고초를 당했으며, 8명은 의기양양해져 왜인들에게 아부하면서 밀상(密商)을 마음대로 행하였다. 그러나 8명 중에 7명은 그 후 목매어 자살하거나 익사하거나 산에서 추락하여 대부분 비명횡사하였고 나머지 1명은 90여 세까지 살면서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이면 상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비를 맞아 가면서 무수히 절을 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배상삼 이야기」의 두 가지 이야기는 매우 대조적이다. 배상삼은 울릉도 본토의 인물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인물로, 같은 인물에 대해 하나는 역적의 모습으로, 다른 하나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두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게 된다. 두 이야기 중에서 먼저 발생한 이야기를 찾는다면 두 번째 이야기이고, 첫 번째 이야기는 배상삼의 이야기가 와전되어 역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