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071
한자 參禮邑
영어공식명칭 Samrye-up
이칭/별칭 삼례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주군 삼례면으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주군 삼례면에서 완주군 삼례면으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56년연표보기 - 완주군 삼례면에서 완주군 삼례읍으로 승격
성격 법정읍
면적 28.61㎢
가구수 6,656세대[2018년 6월 30일]
인구[남/여] 14,413명[남 7,369명/여 7,044명]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에 속하는 법정읍.

[개설]

삼례읍은 10개의 법정리와 64개의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명칭 유래]

삼례읍은 조선시대에 삼례도찰방역이 있었으므로 삼례역 또는 삼례라 했다. 1914년 삼례역의 이름을 따서 삼례면이라 했고, 1956년 삼례읍으로 승격되었다.

[형성 및 변천]

삼례읍은 『1872년 지방지도』에서 ‘삼례역(參禮驛)’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다. 삼례역호남평야의 13개 속역[연무대 양재역, 함열 임곡역, 임피 소안역, 김제 내재역, 부안 부흥역, 고부 영원역, 전주 반석역, 이서 앵곡역, 태인 거산역, 정읍 천원역, 관촌 오원역, 임실 갈담역, 고산 옥포역]들을 관할했다. 삼례역은 종6품의 찰방이 관할하던 역이라서 ‘삼례도찰방역’이라고 불렀으며, 현재 삼례동부교회[삼례리 1074-8번지]가 삼례역이 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당시 300명이 넘는 역졸과 노비를 비롯해 약 1,000여 명의 역민들이 거주하던 대규모의 촌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95년에 작성된 『구한말지형도』에 의하면, 당시까지 삼례역과 그 일대를 포함한 지역이 현재 지형도의 시가지처럼 연속된 지역으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도시적 성격의 가촌(街村)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오백조면(五百條面)이라 해 44개의 마을을 관할했다가 1895년(고종 32)에 창덕면으로 고쳤다. 1914년 군면 통폐합 정책에 의해 관할 지역이 넓어지면서 옛 삼례도찰방역의 이름을 따서 삼례면이라고 하고 수계리, 신탁리, 석전리, 신금리, 구와리, 삼례리, 후정리, 해전리, 어전리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했다. 1935년 전주군의 소속에서 완주군에 속했으며, 1956년 삼례읍으로 승격되고, 1973년 익산군 왕궁면 온수리 일부를 편입해서 10개 리[수계리, 신탁리, 석전리, 신금리, 구와리, 삼례리, 후정리, 해전리, 어전리, 하리]를 관할하고 있다.

[자연환경]

삼례읍만경강의 중하류에 속하는 지역으로 하천 주변의 범람원과 배후습지가 발달하여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삼례읍의 북쪽은 노령산지가 하천유역까지 뻗어내리는 낮은 구릉지를 따라 시가지가 펼쳐져 있으며, 그 남쪽으로 고산천전주천이 만나 형성한 삼례평야는 논농사가 발달하였다.

완주군 비봉면 봉실산(鳳實山)[374m]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낮은 구릉을 이루다가 만경강과 만나 멈춘 곳이 비비정이 세워진 언덕이다. 비비정 언덕 일대에는 백제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삼례토성이 존재했으며, 구릉지를 따라 산록 완사면 곳곳마다 자연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비비정 언덕 바로 아래는 전주와 이어지는 길목의 하나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주막이 즐비했다. 비비정 인근의 사천나루나 춘포 및 회포 등 만경강의 내륙수로 거점인 포구들이 서해까지 점점 이어지다가 진봉반도에서 바다와 만난다. 포구는 군산시와 부안군에서 오는 소금과 젓갈을 실은 배들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던 곳이다. 삼례는 이처럼 육로와 수로가 연결되던 교통의 요지였기에 일찍부터 삼례도찰방역이 있었으며, 근대이행기에는 동학혁명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구릉지 남쪽에 펼쳐진 삼례평야는 조선시대에 삼례찰방역의 역둔전으로 대부분 이용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을 비롯한 친일파 조선인[박기순, 백남신]의 농지로 전용되어 농업수탈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삼례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크고 작은 삼례읍 정미소에서 탈곡하어 삼례 기차역을 통해 군산항까지 반출되었다. 삼례평야를 비롯한 만경강 하류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려고 상류에 해당하는 동상면 대아댐과 경천면 경천저수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비비정 아래 조성된 정수장과 양수장은 일제강점기에 익산시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식수를 공급해 주기도 했다.

[현황]

삼례읍 면적은 28.61㎢이며, 2018년 6월 30일 기준 현재 인구는 총 6,656세대에 14,413명[남 7,369명, 여 7,044명]이다. 삼례읍은 완주군 3개 읍 10개 면의 하나로, 동쪽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남쪽은 전라북도 전주시, 서쪽은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북쪽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과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과 경계를 이루어 전주의 관문 역할을 했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을 가면서 잠시 들렀던 곳도 삼례였다. 이몽룡은 전라도 입구에 해당하는 여산에서 출발해 봉동읍과 익산시 왕궁면을 가로지르는 낮은 구릉지를 따라 삼례까지 이어지던 호남대로를 걸으면서 좌우에 펼쳐진 삼례평야의 들녘을 보면서 지나갔다. 지금은 호남대로를 호남고속도로가 계승해서 도보나 말을 타고 걷는 대신에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로 바뀌었다. 갑오경장 이후에 역원제도가 일본식 우정제도로 그 기능이 바뀌면서 역터는 천민촌이라는 관념 때문에 주민의 대이동이 이루어졌으며, 찰방역을 운영하던 역 둔전은 일본인에게 넘어가거나 아니면 지방 세력가의 차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삼례가 철도교통과 익옥수리조합의 중심 거점이 되면서 조선인 대지주와 일본인이 삼례 철도역을 중심으로 대농장을 만들어 거주함으로써 삼례는 일제의 산미증산계획과 만경강 하류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말미암아 일본의 식량 기지로 변모되었다. 그런데 1956년에 삼례면이 삼례읍으로 승격되면서 도로가 확장 및 포장되고 삼례 버스터미널이 생기면서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삼례읍호남고속도로, 익산-함양고속도로, 익산-광양고속도로 등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익산, 금마, 논산, 대전 등지와 연결되는 4차선 우회도로가 삼례를 거치면서 이전의 교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또한 삼례읍에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었던 양곡창고를 개조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삼례문화예술촌이 자리하고 있으며, 삼례책마을, 비비정예술열차, 비비정마을 등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문화재로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21호 완주 구 삼례양수장, 국가등록문화재 제579호 구 만경강철교, 국가등록문화재 제580호 완주 구 삼례 양곡창고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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