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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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心里花心里窯址1 |
영어공식명칭 | Hwasimri Kiln Site 1 in Hwasim-ri |
이칭/별칭 | 요지,화심리 가마터A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산90-39 일대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유영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 『전북의 조선시대 도요지』 발간을 위한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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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 『문화유적분포지도』 지표조사 |
소재지 | 화심리 가마터1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산90-39 일대 |
성격 | 가마 |
지정 면적 | 약 4,150㎡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변천]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 지표에서 수습되는 백자의 기종 및 가마 도구, 번조 방법[질그릇이나 사기그릇, 도자기 등을 불에 구워서 만드는 일] 등으로 볼 때, 가마터는 조선시대[19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은 만덕산[765m]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위치한다.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는 약암경로당에서 소양상관로[749번 지방도]를 따라 서남쪽으로 1㎞가량 이동한 지점으로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산90-39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사기장골[아랫사기실]’로 불리는 이곳은 완만한 경사를 갖추고 있고 주변에 다량의 수목이 식재되어 있어 가마터가 조성되기 적절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에서 동쪽으로 6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 골프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굴 조사되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에 자기생산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국립전주박물관에서 1997년 『전북의 조선시대 도요지』 발간을 위한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의 범위와 운영 시기가 대략적으로 확인되었다.
[현황]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은 사기장골[아랫사기실]이라 불리는 골짜기 입구에 있으며, 현재 묘지의 조성과 산사면 붕괴로 계곡 바닥에서 자기 12편만 수습되었다.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에서 수습된 백자의 기종은 대접, 접시, 잔 등이며, 굽은 다리굽인데, 굽의 잔존양상으로 보아, 흙 받침을 이용해 포개구이한 것으로 판단된다. 도지미[가마에서 도기를 구울 때 도기를 놓는 받침] 같은 기와 도구도 함께 수습되었는데, 원통형이 대다수이다. 유적의 운영 시기는 1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현재 묘지의 조성과 산사면 붕괴로 지속적인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다.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에서 동쪽으로 6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는 골프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굴조사되었다. 발굴조사에서 각종 분청사기와 함께 이를 생산하던 길이 33m 이상의 가마가 조사되었다. 유적과 유물로 볼 때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의 운영 시기는 15세기 초, 중반경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완주군 내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가마터가 47개소 가량 분포한다. 향후 발굴조사를 통해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의 성격이 밝혀진다면, 완주군의 조선시대 자기 생산 및 유통 관계 등을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유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