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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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生活-李- |
영어공식명칭 | Leegeoduri who lived with Beggar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
집필자 | 김선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1년 9월 23일 -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 황인덕이 이우인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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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1년 -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완주의 구전설화』에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로 수록 |
채록지 |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이거두리|이성한|이보한|백구완 |
모티프 유형 | 선행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서 거지들에게 식량, 옷, 이불 등을 주며 살다 간 양반 이거두리라는 인물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는 황인덕이 2001년 9월 23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일임마을 주민 이우인[남, 72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332~333쪽에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내용]
옛날 이거두리라는 참봉이 전라북도 전주성 북문 밖에 살았다. 전주이씨 가문의 자손인 이거두리는 양반집 자손으로 유학을 하고 사서삼경도 읽었으며 생활도 부유했다. 그러나 이거두리는 과거도 보지 않고 벼슬도 하지 않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은 채 늘 거지들과 어울려 다녔다. 당시 거지들은 전주성 4대문 밖 전주천에서 거적을 깔고 움막을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거두리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가져다가 거지들에게 나눠주었고 같이 공부했던 부호나 알고 있는 부자들의 집에까지 가서 쌀, 옷, 이불 등을 가져다 나눠주었다. 이거두리가 아는 사람 중에 백구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도 두루마기, 겨울 옷, 요 같은 것들을 가져다가 거지들에게 나눠주었다. 이거두리의 지인들은 이거두리가 자신들의 집에 와서 물건이나 쌀을 가져가도 이거두리의 행패가 두려워 그냥 내버려 두었고 이거두리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거지들에게 나눠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거두리가 죽자 전주부의 거지는 모두 이거두리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모여 들여 이거두리의 장례 행렬을 따랐는데 전주부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한 장례 행렬이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의 주요 모티프는 ‘이거두리의 선행’이다. 이거두리의 본명은 이성한인데 이보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양반 가문의 자손이었으나 거지들과 어울려 살며 선행을 베풀었던 이거두리는 기독교 전도 활동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한 이거두리」에는 선교 활동을 했던 이성한의 행적은 생략되어 있고 거지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던 선행을 부각시켜 전하고 있다. 이거두리가 죽자 전주부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장례 행렬이 따랐다는 내용은 이거두리의 인물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