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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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石積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정학수 |
폐지 시기/일시 | 1914년 - 양주군 광석면과 양주군 서석적면을 합하여 양주군 광적면 개설, 서석적면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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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
성격 | 고지명 |
관련 문헌 | 『여지도서』|『호구총수』|『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명칭 유래]
서석적면(西石積面)은 양주목의 서부에 있으며, 들판이 거듭 계속되고 있다는 뜻에서 들의 와전인 돌의 한자어 ‘석(石)’자와 ‘거듭된다’는 뜻의 ‘적(積)’자를 합하여 서석적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서석적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석적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이다. 이미 지리지에서 석적면이라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어 서석적면은 석적면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석면과 석적면을 합하여 광적면이 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광적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서석적면은 양주목의 서부에 있었던 면이다.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에 기록된 양주목의 면리에 따르면, 서석적면에는 일패리·이패리·삼패리·사패리·오패리·행동리·거마동리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양주시 광적면과 은현면 일부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호수는 404호이며, 인구는 2,530명[남자 1,367명, 여자 1,163명]이었다.
[관련 기록]
서석적면에 관한 내용은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