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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400
한자 風詠樓
영어음역 Pungyeongnu
영어의미역 Pungyeongnu Pavillio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교동1길 10] 양산향교 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유영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루
양식 중층누각(重層樓閣)과 운형(雲形) 난간을 두른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
건립시기/일시 1684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98[교동1길 10] 양산향교지도보기
소유자 양산향교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문화재 지정일 1982년 8월 2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 문루.

[개설]

향교는 유교의 성현(聖賢)을 제사하고 지역 사회의 인재 양성과 교화를 위해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공립 교육 기관이다. 향교의 구조는 교육과 제례의 두 공간으로 나뉜다. 강학하는 명륜당과 유생들의 기숙소인 동·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孔子)와 공자 제자 및 유현(儒賢)들을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東·西廡)는 제례 기능을 담당한다.

양산향교는 조선 1397년(태조 6) 군성(郡城) 동쪽 2리에 건립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군수(郡守) 문홍도(文弘道)가 옛터에 대성전을 중창하고, 1612년(광해군 4) 군수 조익(趙翊)이 동·서무와 정문 3칸을 세웠다.

1626년(인조 4) 군수 박곤원(朴坤元)이 대성전을 중수하고, 1632년(인조 10) 군수 조신준(曺臣俊)이 서까래와 기와를 중수하였으며, 제복(祭服)과 제기(祭器) 등 향사(享祀)에 필요한 제반 물건들을 새로 마련하였다. 조신준은 또 1633년(인조 11)에 동·서재(東·西齋)를 세우고, 1634년(인조 12) 명륜당과 전사고(典祀庫)를 신축했으며, 재방(齋房)과 협문(俠門) 및 담장을 축조하여 향교의 규모를 체계적으로 갖췄다.

1676년(숙종 2) 교궁(校宮)을 현재의 위치로 잠시 옮겼다가, 1683년(숙종 9) 군수 김이만(金履萬)이 다시 옛터로 이건하여 대성전을 완공하고, 1684년(숙종 10) 명륜당, 동·서재, 식당, 문루 등을 낙성하였다. 1828년(순조 28) 군수 황찬희(黃贊熙)가 고을 유림(儒林)과 협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1863년(철종 14) 안경록(安景祿) 등이 주도하여 향교를 전반적으로 중수했으며, 군수 임철재(任喆在)가 재임하던 1898년(광무 2) 봄에 화재로 화를 입어 다시 대성전을 완공하였다. 1955년 명륜당을 또 한번 중수했으며, 1970년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향교 전체를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1906년 향교 내에 사립 원명학교(元明學敎)를 설립하여 신식 교육을 시작하였다. 1956년 향교 내에 양산고등공민학교(梁山高等公民學校)를 설립했다가 1977년 다시 분리시켰다. 이후로 양산향교의 교육적 기능은 상실되었으나, 현재 봄·가을로 석전제(釋奠祭)를 봉행하여 제례 기능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양산향교에는 3칸의 대성전, 각 3칸의 동·서무, 5칸의 청원재(淸源齋), 3칸의 풍영루 등이 보존되어 있다.

[변천]

풍영루는 군수 김이만(金履萬)이 교궁을 옛터로 이건한 이듬해인 1684년(숙종 10)에 낙성되었다. 1878년(고종 15) 군수 이민하(李玟河)가 중건했으며, 1970년 양산향교 전체를 보수할 때 다시 정비되었다.

[형태]

1단의 기단 위에 정평주초(定平柱礎)를 놓고 두리기둥을 사용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건물이다. 문은 모두 2짝의 판작문을 사용했으며, 2층은 마루를 깔고 사방에 운형(雲形) 난간을 둘렀다. 지붕은 연등천(椽燈天)을 사용하여 내부의 가구(架構)가 모두 노출된 상태이며, 처마는 홑처마를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풍영루는 제례와 교육을 담당하는 향교 본연의 기능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물은 아니지만, 양산향교로 진입하는 첫 관문으로서 향교의 외형적 인상을 결정짓는 대표적 얼굴이다. 이에 양산향교의 안내판에는 “향교의 출입구에서 하늘을 날 듯한 팔작지붕과 튼튼한 기둥을 받친 풍영루는 정문으로서의 위엄과 함께 향교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하였다.

풍영루는 트인 공간이기 때문에 유생들의 여가 장소 및 여름철 학습 공간으로 애용되었다. 풍영루를 노래한 작품으로 군수 김이만의 7언율시 1수, 진사 안효필(安孝弼)의 7언율시 1수, 도사(都事) 박천수(朴天銖)의 7언율시 1수가 『양산군지』와 『양산의 누정재지』에 수록되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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