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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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瑾追慕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An Geun |
이칭/별칭 | 의사 구암안근선생 추모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56-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태문 |
성격 | 금석각류|추모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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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71년 |
관련인물 | 안근 |
재질 | 오석 |
높이 | 139.5㎝ |
너비 | 47.5㎝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56-3 |
소유자 | 양산시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안근(安瑾)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경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산군수 조영규는 동래성에서 분전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군수를 잃은 양산 백성들이 어쩔 줄을 모르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근이 두 아들 안시명, 안이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전공을 올렸다. 관리로서의 직분을 다하다 생을 마친 춘추원 삼조의열(三朝義烈)과 달리, 야인(野人)으로서 충정을 다한 안근을 기려 양산 시민들이 사후 360여 년이 지난 1971년에 추모비를 세웠다.
[위치]
양산시 교동에 있는 춘추공원의 장충단(獎忠壇)에 있다. 장충단의 여섯 개 비석 가운데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있다. 인근에 양산향교가 있다.
[형태]
비두와 비신 및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재질은 오석으로, 비두는 높이 45㎝, 너비 84.5㎝, 두께 60㎝이며, 팔작지붕의 가첨석(加檐石) 모양을 하고 있다. 비신은 높이 139.5㎝, 너비 47.5㎝, 두께 21.5㎝이며, 비좌는 가로 79㎝, 세로 45㎝, 높이 4㎝인데, 비두, 비좌, 비문 모두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의사구암안근선생추모비(義士龜庵安瑾先生追慕碑)’라 기록되어 있다. 왼쪽 측면에는 ‘양산군수 황정복(黃貞福)은’으로 시작되는 국한문 혼용의 비문이 뒷면과 오른쪽 측면에 새겨져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춘추원에 삼조의열(三朝義烈)이 잠들어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직책을 완수하다 돌아가신 분이고, 안근은 야인이면서도 자식, 종제 등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니 이들이 양산을 지킨 인물들로 후손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의 오른쪽 측면에는 “서기 1971년 4월 일 양산군수 황정복 글 짓고, 문화공보실장 석희준 글 쓰고, 춘추계장 김영달 일 보다”라고 적어 비석을 세우는 데 중심이 된 이들을 기록하였다.
[현황]
춘추공원에 들어서면 신라 대양주도독 김서현 장군 기적비(新羅大粱州都督金舒玄將軍紀蹟碑)와 이원수의 「고향의 봄」 노래비가 있고, 바로 위에 삼조의열(三朝義烈)을 모신 장충단(獎忠壇)이 있다. 장충단은 가로 11m 90㎝, 세로 7m 39㎝, 높이 1m 70㎝의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입구 양쪽 돌기둥에는 ‘만년춘추(萬年春秋)’와 ‘삼조의열(三朝義烈)‘이란 붉은 글자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