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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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大禧 |
영어음역 | Bak Dae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강식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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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 |
성별 | 남 |
생년 | 1886년 |
몰년 | 1959년 |
본관 | 밀양 |
대표경력 | 대동단원·독립군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86년 박경영(朴瓊榮)과 김남이(金南伊)의 차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심금순(沈今順)과 결혼하였으나, 사별한 후 최명이(崔名伊)와 재혼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1947년경부터 양산시 원동면 원동초등학교 앞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였으며, 1959년 1월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박대희(朴大禧)는 일제강점기 양산의 항일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대동단에서 활동하였다. 흥업단(興業團) 소속의 이만준(李萬俊)이 운영 경비 조달을 위해 경상도 지역에 익숙한 최성기 등을 데리고 국내로 들어왔는데, 이때 양산과 밀양 지역에서 박대희를 포함하여 17명이 포섭되었다.
이후 박대희는 흥업단에 들어가 10여 회에 걸쳐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약종상인 정남서(丁南瑞)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다가 거절되자 총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일본 경찰의 추적이 심해지자 심상욱(沈相郁)과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