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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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周奉 |
영어음역 | Jeong Jub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강식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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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
성별 | 남 |
생년 | 1901년 |
몰년 | 1959년 |
본관 | 동래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주봉(鄭周奉)은 1901년 아버지 정갑룡(鄭甲龍)과 어머니 정아기(鄭兒其)의 아들로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서 태어났다. 1921년 김갑선(金甲先)과 결혼하였으나 이혼한 이후인 1944년에는 배희이(裵喜伊)와 재혼하였다. 1959년 3월 30일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에서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정주봉은 1919년 3월 경상남도 양산군청의 사환으로 근무할 당시 엄주태(嚴柱泰) 등으로부터 3·27의 양산의거 참가를 권유받았다. 이에 정주봉은 엄주태 집으로 군청 등사판을 보내 독립 선언서 등을 등사할 수 있도록 협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9년 3월 27일의 양산의거에도 직접 참가하여 양산장에서 만세를 외치다 경찰에 검거되었다. 1919년 4월 12일의 부산지방법원의 징역 1년 6월 선고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