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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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好仁 |
영어음역 | Jeong Hoin |
이칭/별칭 | 소산(蘇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진상원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소산(蘇山). 조선 전기 예조참의를 지낸 정절(鄭節)의 8세손이며, 의능참봉(義陵參奉) 정희란(鄭希鸞)의 큰 아들이다. 동생은 임진왜란시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정호의이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양산향교 교임이었던 정호인[1554~1624]은 공자의 위패를 교동으로 옮겨 지켰으며,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9년 만에 돌아왔다. 임진왜란 선무 3등공신의 녹권을 받았고 1603년(선조 33)에 후능참봉의 벼슬이 내려졌다. 230여년이 지난 1832년(순조 32)에는 호조좌랑에 추증되었다.
[상훈과 추모]
동래정씨 양산문중에서 1835년(헌종 1) 소산사(蘇山祠)를 건립하고, 춘추로 제향하였다. 소산사(蘇山祠)가 훼철된 이후 복원된 소노서원에 동생 정호의와 함께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