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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향토의 역사를 소개하는 이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E030104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락

북부동 327-2번지에 위치한 양산문화원 2층에는 양산의 역사와 문화, 관광에 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 양산향토사료관(梁山鄕土史料館)이 있다. 양산문화원이 있는 이 일대는 그 옛날 양산읍성이 있던 곳으로 동헌과 객사를 비롯한 관청과 부속 건물들이 있던 자리이다. 동헌(東軒)이 있던 자리는 양산군청을 거쳐 중앙동사무소가 자리하고 있고, 현재의 문화원은 보건소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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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토사료관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 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문화원은 주민에게 문화접촉의 기회를 넓혀 주고 고유의 문화를 개발·보존하는 지역문화 복지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향토문화의 창달을 위해 갖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양산문화원에서는 매년 열리는 삽량문화축전을 주관하고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를 발굴·정리·보존과 문화자료의 조사·보존을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문예진흥 및 국제문화교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향토문화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 양산의 역사·문화·관광이 집약된 양산향토사료관

2003년 10월 7일 개관한 양산향토사료관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휴식하면서 역사 자료를 통해 생활의 지혜와 창의력을 키워줄 새로운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와 인물사관, 문화재관, 유물관, 생활용품전시실 등 5개 전시실과 종합영상실을 갖추고 있으며, 개관 당시에는 유물 100여종, 180여점과 생활용품 260여종, 350여점을 확보하여 전시하기 시작했다.

양산시는 신기·북정 고분 근처에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시립유물전시관 건립하고 문화원도 이전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10년까지 160억원이 들어가는 시립유물전시관은 신기동 산 29번지 일대 13만5천㎡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면적 4천900여㎡ 규모로 세워지는데, 유물전시관에는 국내 고분군 발굴사상 최초로 출토된 금조족(金鳥足)을 비롯해 국보급인 은제허리띠, 토기류 등 지역에서 발굴된 1천950여점이 전시, 보관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관 안에는 아동문학가이자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고향의 봄」 노랫말은 쓴 이원수 선생의 기념관이 들어서고 바깥에는 ‘고향의 봄 동산’도 만들 예정인데, 지역 전통문화와 예술을 보전·계승하는 북부동 양산문화원이 낡고 협소하다는 지적에 따라 유물전시관 부속동 건물로 문화원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유물전시관이 건립되고 문화원이 신축되면 인근에 신기·북정 고분군과 신기산성과도 연계하여 지역 최대의 문화타운을 형성하게 될 것이므로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를 것은 물론이고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교육장소도 거듭나게 될 것이다.

양산향토사료관에 가면 오는 이들을 반기며 상세한 설명도 해 주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 그들은 향토사료관의 보물이자 지킴이인데 이헌선(53)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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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선(53) 씨

이헌선 씨는 “양산의 전반적인 문화가 하나의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양산에는 박물관이 없다보니 소규모이지만 그나마 압축되어 있는 공간인데,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 관광에 대한 학습공간이기도 하죠.”라며 향토사료관을 소개한다.

이곳 향토사료관에는 개인적으로 찾는 이도 있지만 단체로 오는 경우도 있어 많은 이들이 다녀간다. “저희가 연초에는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께 양산을 알려야 되겠다는 취지에서 교육청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는데요. 이 프로그램을 만들 당시 교육장님이 양산 아이들을 가르칠 건데 양산에 대해서 알아야 다가가기가 수월할뿐더러 아무리 양산을 거쳐 가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고장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아이들한테 전해주어야 안 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또 고3 수험생의 수능 후 프로그램으로 양산투어도 있고요. 처음 발령을 받은 공무원들도 다녀가고 있어요.”

이헌선 씨는 이곳을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한다. “여기가 참 안 와지는 곳이거든요. 하지만 한 번 오시기만 하면 기억에 남고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드시는가 봐요. 전시실을 한 번 돌아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설명이 끝나면 ‘아이들 데리고 오겠습니다.’라고 하시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부모님은 꼭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온단다.

향토사료관은 인근에 양산초등학교, 양산중학교, 양산고등학교가 있어 숙제를 하기 위해찾는 학생들도 있고, 더러는 양산도서관에 가기 위해 지나다가 들르기도 한단다. “한 가지라도 ‘아- 그런 게 있더라.’며 기억을 해 주면 성과가 있다고 봐요. 요즈음은 홍보를 많이 한 관계로 단체로 많이 오고 있어요. 처음에 개관하고는 ‘찾는 사람들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활용되는 공간이 되었죠. 앞으로 이 보다 큰 유물전시관이 지어지면 많은 유물도 전시할 수 있고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라며 희망 섞인 말을 전한다.

▶ 한 달 동안 양산과 진주를 오가는 강행군 끝에 얻은 문화관광해설사

이헌선 씨가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기까지는 고민을 거듭한 만큼 어려움도 있었단다. “처음에 ‘문화관광해설사 한 번 해 볼래?’라고 했을 때, 그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여서 ‘도대체 그게 뭐냐?’고 되물었죠. 그러면서 당시 제가 학생상담자원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설사를 하면서 그걸 접목하면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번뜩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걸 한 번 해보자.’고 했죠.”

하지만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단다. “제 성격은 어떤 일이든 쉽게 결정을 하지 않고 많이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이 일도 몇 개월에 거쳐 고민을 했죠. 이 일을 해서 과연 득이 될까, 또 남편 입장에서는 ‘왜 이런 걸 하려하나?’하고 안 좋게 볼까봐 눈치도 보이고요. 무엇보다 교육을 받으려면 돈이 들어가잖아요? 그 돈이 남편 봉급에서 나와야 하니까요.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죠.”라며 신중하게 결정한 것이었음을 말한다.

막상 교육 신청을 하고나니 양산에서 진주까지 갔다 왔다 하는 게 문제였다. 노선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가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어 한 달 동안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 때 진주국제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아침에 시커먼 차가 아파트 앞에 와서 대기했다가 사람을 태워서 가고 정해진 시간에 데려다주고 하니까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춤바람 났다.’고 소문이 돌았더라고요. 그걸 한참 뒤에 알았어요. 청바지 차림에 편한 복장으로 매일같이 다니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책이라고 몇 권 끼고 여자가 저런 복장으로 도대체 어디로 가겠느냐. 뻔하지’ 그랬나 봐요. 우스웠죠.”라며 당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이헌선 씨는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또 한 번 망설이게 된다. “각 시·군마다 오신 분들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와 같은 상담자원봉사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오신 분들이 쟁쟁하셨어요. 고고학자, 사학자, 정년퇴임하신 교장선생님, 전직 교사출신, 지역적으로 문화재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신 분들이 오셨더라구요. 주눅이 들었죠. 그래서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제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리인 줄 모르고 왔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죠. 그런데 쉬는 시간에 그 분들이 제게 용기를 주셨어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할 수 있다.’라고 격려를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죠.”

그는 하루, 이틀 교육을 받으면서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의 교육이 끝나고 수료증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었다. 어려운 과정을 다 소화해 낸 것이다. 매일같이 먼 거리를 오가면 교육을 받는 일이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단다.

이헌선 씨가 해설사가 되기까지의 일등 공신은 사랑을 베푼 가족들이었다. “제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남편의 배려가 큰 힘이 되었고, 또 우리 큰 아이가 ‘엄마 진짜 한 번 해 보세요. 엄마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하면서 용기를 불어 넣어 줄 때 자신감이 저절로 생겼죠.”라며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저희를 매일 태워다 주신 렌터카 기사님은 거기에 가서 매일 시험을 치는 줄 알았나 봐요. 내려주면서 항상 ‘1등 하고 오십시오.’하는 그 말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요. 해설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뵙지는 못한 게 지금까지 걸리는 부분이에요.”라며 뒤에서 성원한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 문화관광해설사, 우리 고장 양산을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

이헌선 씨가 문화관광해설사가 된 뒤 다시 양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했다. “기초적인 공부는 끝났으니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공부를 해야 했죠. 양산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태어나서 근 4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다보니까 양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어요. 직장생활을 금성알프스에서 6년 정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왔다 갔다 하는 길 정도, 또 출근하면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일만 알았지 양산에 대한 것은 솔직히 잘 몰랐어요. 양산에 대해 하나씩 익히기 시작했죠. 이 일을 하면서 ‘아- 이런 것이 있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그에게서 성실한 자세가 몸에 밴 것을 느낄 수 있다.

공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이런 공부를 하면서 현장에 계신 분이나 그 지역에서 오래 거주하신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어요. 그 나름대로 먼저 공부하신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들을 따라 다니면서 공부했는데, 솔직히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었죠. 한 번 봐서 이해가 안 될 때는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또 현장에 가서 보기도 했죠. 일반적인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적인 서적을 보기도 하고, 특히나 양산에는 불보종찰(佛寶宗刹) 통도사가 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라며 그간 양산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헌선 씨는 해설을 할 때 듣는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한단다.

“알아듣기 쉽게 해설하는 것이 해설사의 임무라고 생각하거든요. 글로 된 해설을 보는 것보다 이야기 쪽으로 하니까 빨리 귀에 들어오고 공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 우리도 이렇게 이야기 식으로 전개를 해야 하겠구나.’하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다 같은 통도사 설화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것을 여러 사람들한테 들어보고 접목을 많이 했죠. 이야기 식으로 꾸며서 하니까 듣는 분들이 이해가 빨리 된다고 하더라고요.”라며 나름대로 연구한 방식을 알려 주기도 한다.

그는 문화관광해설사를 하면서 어려움은 있지만 보람도 크다고 한다. “양산을 찾는 분들이 그냥 둘러보시고 ‘문화재가 이런 것이 있구나.’하는 것보다 저희들의 해설을 듣고 나서는 ‘문화재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하시니까 저희들도 보람이 있고요. 그런 보람으로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비가 올 때는 바짓가랑이가 비에 젖어 설렁설렁 거려도 ‘너무 고맙습니다. 다음에 오면 꼭 찾아오겠습니다.’라는 인사 한 마디 해 줄 때, 집에 가서 파김치가 되거나 목이 잠겨도 큰 보람을 느껴요.”

그 뿐이 아니다. “해설에 집중하다보면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그걸 못 느낄 때도 있거든요. 추운 겨울에는 손으로 탑을 이렇게 가리킬 때 손이 바들바들 떨릴 때도 있어요. 그러면 관광객들이 외투를 벗어서 ‘떨지 마십시오.’하면서 어깨에 올려 줄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제 해설을 듣는 분들을 위해서 용기도 생기고, 자연적으로 열과 성을 다하게 되죠.”라며 후한 마음씨를 가진 이들을 만나 보람을 느낄 때를 추억한다.

이헌선 씨는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른다.”며 이해를 구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안합니다. 제가 거기까지는 공부를 못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공부 열심히 해서 도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문화관광해설사는 우리 고장을 찾는 관광객에게 소중한 지역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 주며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맡아 현장의 생생함을 전해 주는 전문인이다. 그들은 문화유적지 등 관광명소에 배치되어 문화재 및 지역문화, 관광자원 등을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정확히 설명하여 이해시킴으로써 관광객의 문화관광 체험 및 우리 관광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이들로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홍보대사이다.

양산시에는 모두 4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그들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으며 한 명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향토사료관에서 안내를 하고 있다. 또한 『양산시보』를 통해 우리 고장의 문화재와 명승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 500여 시간의 자원봉사로 다져진 봉사정신

이헌선 씨는 문화관광해설사를 하기 전, 1999년부터 학교상담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양산중학교, 양산여자중학교, 삼성중학교, 삼성초등학교에서 집단상담과 개별상담을 했는데 그가 봉사활동을 한 시간수를 합치면 500시간 넘는단다. 자원봉사로 다져진 투철한 봉사정신이 그대로 문화관광해설사 일에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양산시 상담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 ‘울타리’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그는 스스로를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열심히 해야 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이헌선 씨는 상담자원봉사를 통해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며 봉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꼈단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에게 다가가면서 마음 열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제가 상담자원봉사를 하는 걸 아이들 친구들이 아니까 저희 아이에게 ‘너는 좋겠다. 엄마가 다 이해해주니까.’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집에 가면 평범한 엄마이거든요. 작은 아이가 중 2때, 저는 마음을 다 열었다 생각했는데 아이 눈에는 그렇게 안 비쳐졌나 봐요. 대화 중에 아이가 ‘우리 엄마 많이 컸다.’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순간 놀랐죠. ‘아- 이제 마음을 열었구나.’하고 느꼈습니다.”라며 그 때를 회상한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부녀간의 갈등으로 마음이 닫히는 일이 생기게 되었단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어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우리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저도 모르게 마음으로 안 받아 들여지는 겁니다. 그 당시에는 아이한테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고 보니까 아이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격이 되었더라고요. 다시 다가가서 ‘엄마가 굉장히 미안했다. 엄마가 너희를 이해해 주려고 했는데 역시 엄마는 엄마밖에 안 되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너무 후회를 하고 있는데 만약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엄마가 자유스럽게 해 줄게.’라고 했답니다.”라며 엄마로서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 놓는다.

그는 젊은 엄마들에게서 아이들과 의견 충돌이 생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지나가라. 나중에 후회한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를 억압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충고를 하기도 한단다. 요즈음은 아이들에게 ‘눈높이’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가슴높이’로 다가가야 한다는 말도 있다. 어른들이 그들을 먼저 이해하고 다가가는 게 바람직 할 것 같다.

이헌선 씨는 현재 문화관광해설사 외에 삼성동 청소년지도위원을 맡아 야간에 순찰활동을 하며 청소년을 지도, 계몽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라는 건 개인생활을 접어놓고 할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모든 선도위원들이 열의를 가지고 해 주시니까 잘 돌아가고 있어요. 자랑이지만 양산시에서 칭찬 많이 듣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에게 다른 단체에서 제의는 많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는데 수년간 상담자원봉사활동을 경험삼아 그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일이어서 이 일을 택했다고 한다. 그런 데는 나름대로 그 만의 이유가 있다. “제 나이 50이 넘다보니 어떤 일을 맡아 달라든지 어떤 단체의 장(長) 자리 제의가 들어오기도 하는데요. 지금 하는 것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데 제 능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절대 안 돌아보거든요. 제 그릇이 이 만큼인데 그게 넘쳐 버리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거든요.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 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분수에 맞고 자신의 그릇에 맞는 봉사를 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것 같다.

문화관광해설사 이헌선 씨. 그는 우리 고장의 문화유적지 등 관광명소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역사, 문화, 관광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설명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 및 관광자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기억에 남는 체험관광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양산의 역사와 문화, 관광지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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