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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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박종오 |
놀이 장소 | 도포제 줄다리기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도포 1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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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에서 음력 정월 닷새와 칠월 칠석 때 행하는 민속놀이.
[개설]
도포제 줄다리기 는 영암군 도포면 도포 마을에 전해 오는 민속놀이이다. 도포 마을의 ‘제(祭) 줄다리기’ 유래를 고증할 문헌 자료는 없지만,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구전에 따르면 마을터 형국이 돼지 형국이라 지기(地氣)와 지운(地運)을 받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도포제 줄다리기 는 음력 정월 닷새와 칠월 칠석에 행하고 있다. 1991년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문화 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마을 연혁 및 유래]
예로부터 도포리는 포구(浦口)로 크게 번창한 마을이었다. 1600년대 초 나주 땅에 살던 김해 김씨 김한수, 여산 송씨 송근룡, 경주 최씨 최삼지 등 세 사람이 당시 무인도였던 도포 마을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는데, 주로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도포 마을은 덕진강이 통과하는 넓은 평지에 위치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나포, 동도포, 서도포 등이 있다. 동도포는 도포 동쪽에, 서도포는 도포 서쪽에 있다. 나포 마을은 서도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마을 앞에 개[浦, 포구]가 있어 나포라 한다. 또한 유자평이라 하여 도포리와 덕화리 오지깃들에 걸쳐 있는 들이 있다.
도포리는 1980년대 이전에는 배가 드나들었던 조그마한 항구가 있는 농촌이었는데, 지금은 영산강 하굿둑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면서 항구가 없어진 상태이다. 또한 도포리는 원래 영암군 종남면에 속해 있었고 이름도 도싯개·도삿개·도시포·도포 등으로 불렸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나포리와 병합되어 도포면에 속하게 되었다. 2011년 현재 89세대 173명[남자 90명, 여자 83명]이 거주하고 있다.
[줄다리기의 유래]
도포제(都浦祭) 줄다리기 는 마을의 터가 돼지 형국이라 해서 밤구시혈(穴)에 천제단(天祭壇)을 설단하고, 해마다 정월 닷새와 칠월 칠석에 제를 지내 지기(地氣)와 지운(地運)을 누리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관련 설화에 의하면 도포 마을은 서쪽으로 도포면 봉호리의 사자산(獅子山)과 북쪽으로 신북면의 호산(虎山)에 둘러 싸여 있는데, 마을 터는 돼지산[狙山]이 중심을 이루는 돼지 형국이라는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라는 맹수의 세력을 막기 위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무사(武士)가 호랑이산과 사자산을 겨냥해 화살을 쏘는 주술 의식을 행하고, 동도포와 서도포로 편을 갈라 터 누르기를 위한 제(祭) 줄다리기를 행하는 것이다.
도포제 줄다리기 는 이렇게 풍수지리 사상에서 유래되었고, 산신에 제를 모시는 제의성(祭儀性), 활을 쏘아 맹수를 막고자 하는 주술성(呪術性)과 연극성(演劇性), 그리고 줄을 당기는 모의적 놀이성 등 의례와 놀이가 하나로 만난 종합적인 작품이다.
[도포제 줄다리기 과정]
도포제 줄다리기 는 줄다리기에 사용될 줄 제작 과정부터 시작된다. 줄은 작은 줄 세 가닥을 꼬아 만드는데, 작은 줄 세 가닥으로 만든 줄을 다시 세 가닥씩 엮어 거대한 줄로 완성한다. 줄은 규모가 워낙 커 직접 손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줄 사이에 나무를 끼워 만들며, 완성된 줄은 약 100m 정도 된다. 이렇게 만든 줄은 고를 만들어 암줄과 수줄 2개로 나눈다.
줄이 만들어 지면 도포제 줄다리기 2~3일 전 아이들의 골목 ‘줄놀이’가 시작된다. 그리고 행사 당일 오전 윗마을과 아랫마을[동도포와 서도포]로 편을 갈라 줄 머리에 각종 깃발과 풍물패를 앞세우고 등장한다. 줄놀이에는 장수 외에 살판재비가 올라 다양한 묘기를 부리며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러나 양 진영이 만나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등 치열한 고싸움을 벌인다. 이를 진놀이라 한다.
이렇게 줄놀이, 진놀이가 끝나면 암줄에 수줄을 끼워 넣는 고걸이를 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행위를 빗댄 진한 농담이 오가기도 한다. 참나무 비녀목으로 고를 걸고 나면 간단한 제례를 올린다. 헌작(獻酌)과 축관(祝官)의 독축(讀祝)에 이어 궁사가 화살을 쏘고 나면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줄다리기는 치열하기 때문에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단 승부가 갈리면 승자는 전리품으로 패자의 줄 꼬리를 잘라 승전가를 부른다. 이후 메구를 앞세워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춤판을 벌여 화합과 축제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줄다리기는 끝이 난다.
도포제 줄다리기 가 열리는 날이면 외지에 나가 있던 가족들과 친인척들이 모이며, 보기 드문 굿거리라 덕진면, 서호면, 시종면, 군서면 일대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예전에 도포가 섬이었을 때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불편이 있었음에도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줄소리]
어따 야들아 줄 걸어매라/ 어널널러 상사디어
힘차게들 소리를 맞소/ 어널널러 상사디어
우리장군 녹두장관/ 어널널러 상사디어
서쪽군사 어디를 갔나/ 어널널러 상사디어
짝짝 장단을 맞추어라/ 어널널러 상사디어
힘차게들 소리를 맞소/ 어널널러 상사디어
민디 사람 보기도 좋게/ 어널널러 상사디어
동편에는 말도 많네/ 어널널러 상사디어
솔밭에는 괭이도 총총/ 어널널러 상사디어
김첨지네 살림살이/ 어널널러 상사디어
대밭에는 마디도 총총/ 어널널러 상사디어
말도 많고 말도 많네/ 어널널러 상사디어
하늘에는 별도 총총/ 어널널러 상사디어
서편사람 장담소리/ 어널널러 상사디어
꽃밭에는 꽃도 총총/ 어널널러 상사디어
앉은쟁이 장담소리/ 어널널러 상사디어
구정물통에 호박씨떴네/ 어널널러 상사디어
발을 맞춰 보기좋게/ 어널널러 상사디어
과부요강에 똥덩이 떴네/ 어널널러 상사디어
동편사람 술만 먹고/ 어널널러 상사디어
지시락 밑에는 새 새끼 놀고/ 어널널러 상사디어
춤만 추고 잘들노네/ 어널널러 상사디어
가세 가세 어서가세/ 어널널러 상사디어
[공동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
도포제 줄다리기 는 돼지 터 형국인 마을의 서쪽과 북쪽의 사자산과 호산이 항상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맹수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자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줄다리기에 앞서 간단한 제례를 행하고, 궁사가 사자산과 호산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은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도포제 줄다리기는 두 개의 줄을 만들고, 고를 결합시켜 당기는 쌍줄다리기 형태이다. 양편의 고를 끼우며 각종 음담패설을 나누는 것은 성적(性的)인 결합을 통한 풍요의 기원이며, 줄다리기가 끝난 후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춤판을 벌이는 것은 공동체의 화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포제 줄다리기는 공동체 의례와 놀이의 결합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놀이인 셈이다.
한때 도포제 줄다리기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나 1980년대 초 도포리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은 전라남도 영암군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현재 영암군민의 날, 영암 왕인 문화 축제 등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