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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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삼한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삼한 시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무렵에는 대형 옹관을 매장 시설로 활용한 세력이 시종면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초기의 대형 옹관묘는 시종면을 비롯하여 학산면, 금정면 등에서 발견되고, 후기의 대형 옹관 고분은 시종면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삼국 시대]
삼국 시대에 들어와 영암 지역은 백제에 편입되었는데, 그 시기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4세기 후반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옹관 고분 등 고고학적 증거로 보아 6세기 전반으로 해석하는 설도 있다. 백제는 복속한 지역에 여러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월내군(月奈郡)은 영암읍과 덕진면, 군서면 일대에 있었다. 또 미암면과 학산면 일대에는 고미현(枯彌縣), 금정면 일대에는 아로곡현(阿老谷縣), 시종면 일대에는 반나부리현(半那夫里縣)이 있었다.
백제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은 5~6세기에 조성된 대형 고분과 산성 등이다. 월내군 관련 유적은 영암읍 망호리 후정 고분군, 송평 고분군, 덕진면의 금강리 금산 고분 등이 있다. 고미현 관련 유적은 미암면의 두억과 마봉 고분, 선황리 당리 고분과 선황산성 터, 학산면 금계리 고분군과 유물 산포지 등이 있다. 아로곡현 관련 유적은 금정면의 금대 고분 등이 있다. 반나부리현 관련 유적은 시종면 내동리 고분과 성틀봉 토성터, 옥야·신연·금지·태간 고분군 등이 분포한다.
[남북국시대]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신라에 편입되어 757년(경덕왕 16)에 월내군은 영암군으로, 고미현은 곤미현(昆湄縣)으로, 아로곡현은 야로현(野老縣), 반나부리현은 반남군(潘南郡)으로 개칭되었다. 남북국 시대에 월출산에서는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로 소사(小祀)가 올려졌으며, 월출산의 남쪽 월남촌과 서쪽 구림촌이 유명한 마을로 성장하였다. 구림 마을에는 영암 구림리 요지[사적 338호]와 영암 정원명 석비(靈巖 貞元銘 石碑)[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81호]가 있으며, 사찰로는 구림 마을 출신 도선(道詵)[827~898]이 어렸을 적 머물렀다는 도갑사가 있다. 최치원, 최승우, 김가기는 영암에서 장삿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갔으며, 후삼국 시기에 구림 출신 최지몽(崔知夢)[907~987]은 왕건을 만나 핵심 참모로 활동한 후 중앙으로 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