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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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朗州安南都護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연식 |
[정의]
고려 전기에 지금의 영암 지역인 낭주에 설치되어 1012년(현종 3)까지 유지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
[개설]
낭주 안남 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는 고려 940년(태조 23)에 처음 등장한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가 995년(성종 14)에 지금의 영암군에 해당하는 낭주(朗州)에 옮겨 설치된 것이다. 1012년(현종 3)에 고부(古阜)로 옮겨갈 때까지 약 17년간 영암을 거점으로 서남 해안 지역에 대한 해안 방비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도호부는 고려의 지방 통치 및 군사 거점으로 기능하던 체계이다. 남쪽을 관할하는 안남 도호부는 940년에 전주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983년(성종 2)에 12목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995년에 지방 행정 체제를 개편할 때 다시 설치되어 현재의 영암군에 해당하는 낭주에 위치하게 된다.
이때의 지방 운영 체계는 12주(州)의 절도사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도호부는 이에 대한 보완적인 성격을 갖는 제도였다. 즉, 절도사는 지방 거점을 지배함으로써 광역 지방 운영 체계를 형성하고 군사적 부분까지 총괄한 것인데 비하여 도호부는 변경의 특정한 군사 거점으로 기능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안남 도호부가 전주에서 낭주로 이동해 온 것은 서남 해안 지역에 대한 해안 방비의 목적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940년에 설치되어 983년까지 전주에 설치되었던 안남 도호부는 공무를 담당하는 장리(長吏)들을 검핵하는 상급 체계로서 기능하였다. 이는 후삼국 통일이라는 상황에서 연원한 것으로 과도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성종 대에 본격적으로 지방 통치 체제가 정비되면서 도호부의 민정적 기능이 12목으로 흡수되고 그 군사적 기능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993년(성종 12)에 거란과의 1차 전쟁을 치르면서 군사 운영 체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995년에 광역 단위의 군사 운영을 담당하는 12주 절도사를 설치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5도호부가 다시 편성되었다. 이때의 도호부는 변경의 특정한 군사 거점으로 기능하면서 12주 절도사를 보완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낭주의 안남 도호부는 해안 방비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생각된다.
[변천]
1012년에는 12주 절도사가 폐지되면서 절도사가 담당하던 민사 기능은 안무사(按撫使)로, 군사적 기능은 5도호부로 이관되었다. 이때 낭주의 안남 도호부는 고부로 이치(移置)되었다. 이는 남도 지역의 도호부 운영이 12목 설치 이전과 같은 구도로 복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안남 도호부가 단순한 변경 거점에서 벗어나 남도 지역의 군사 운영을 총괄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후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가 개편되면서 안동 도호부가 폐지되어 4도호부로 축소되었지만 안남 도호부는 존속되었다. 다만 고부에서 다시 전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이 지역이 옛 후백제 지역으로서 여전히 직접적인 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018년의 개편으로 고려 전기 광역 운영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안남 도호부는 그 뒤 1082년(문종 36) 경에 폐지되었다. 이는 지방 통치 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더 이상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통제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결국 고려의 도호부는 군사 방어의 중요성이 큰 양계 및 서해도 지역에만 남게 되었으며, 이러한 체제는 수주(樹州)에 안남 도호부가 복설될 때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