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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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珍島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고려 말 공도정책으로 지금의 영암군 시종면으로 이거되었던 진도군의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말 왜구의 창궐로 인하여 공도 정책(空島政策)[섬에 살던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서남 해안에서는 흑산도, 압해군, 장산현, 진도군이 해당되었다. 진도군의 경우는 1350년(충정왕 2)에 당시 나주 땅이었던 종남면의 월량지(月良只)[지금의 영암군 월악리]로 이거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암군 고적 조에 의하면, “고진도(古珍島)는 곤미현 서쪽에 있다. 고려 충정왕(忠定王) 때에 진도현(珍島縣)이 왜구 때문에 땅을 잃고 여기에 붙어 살다가 이제는 본토에 돌아갔으나 고을 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라고 하였다.
[변천]
나주 종남면 월악리에 있던 진도현은 1409년(태종 9)에 이르러 진도와 가까운 해남현과 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라 하고 또 이거하였다. 해진군은 1412년에 영암(靈岩)의 속현(屬縣) 옥산(玉山)[지금의 해남군 삼산면]의 땅으로 치소를 옮겼다. 한편 진도현이 나주 종남면에서 해남 지역으로 옮겨가자 월악리에서 영암군 명산리로 면소재지를 이거하고, 조선 시대 내내 진도군에 속한 명산면(命山面)으로 존재하였다. 이런 명산면은 영암 땅 내에 있으나 진도군에 속한 월경지로 1906년까지 존재하였다가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명산면에 속한 마을과 호구 수가 전한다. 마을은 10개로 상월악리, 하월악리, 만수동, 아저리, 송산리, 내동리, 입석리, 태산리, 명산리, 송간리가 해당된다. 가구는 전체 293호이며, 인구는 1025명인데 남자가 551명, 여자가 474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