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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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佛島住民移住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헌 |
[정의]
1970년대 중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한 나불도의 주민들이 영산호 국민 관광지 조성 계획에 따라 삶의 터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긴 일.
[개설]
나불도는 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등과 함께 영암군에 딸린 여섯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면서 육지가 된 곳이다. 1970년대까지 이 섬에는 두 개 마을에 53가구[농가 23가구, 반농반어(半農半漁) 30가구] 301명[남자 159명, 여자 14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나불도가 영산호 국민 관광지로 개발됨에 따라 주민이 타지로 이주하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1970년대까지 영산강 유역은 치수 시설의 미비와 여름에 편중된 강우량 때문에 거의 해마다 수해와 한해 등 자연재해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정부는 1969~1971년 영산강 유역 5단계 종합 개발 계획을 수립하였고, 이 중에서 2단계 사업인 영산강 하굿둑은 1978년에 착공하여 1981년에 준공하였다. 이 공사 때문에 영산강 하구에 자리 잡은 나불도가 육지화되면서, 영산호와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 조성 등 주변 개발지와 연계된 관광지 개발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경과]
나불도가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기에 앞서 주민 이주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주는 1979년 5월에 마무리되었다. 당시 나불도 주민의 인구 구성과 전출 현황을 보면, 전 주민의 이주는 1970년대 중반 전후로 시작되었고 이주 형태는 세대 단위로 이루어졌다. 이주민 가운데 인접 지역인 전라남도 목포시와 영암군으로 89명이 이주하였고, 대도시인 서울특별시과 전라남도 광주시 등지로는 젊은 세대들이 직장과 학업 때문에 이주하였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이주 연도가 다른 것은 학생들은 전학을 위하여 먼저 퇴거한 사례가 많았고 세대주는 그다음에 퇴거하였다. 이 가운데 인근 삼호읍내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대대로 나불도에서 붙박이로 살던 사람들로, 농토가 주위에 있거나 새로운 농토를 마련하여 재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주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보상금과 이주할 장소에서의 생활이었다. 1970년대 중반 주민들이 보상받은 내역을 보면 논은 평당 2,200원, 밭은 1,100원, 임야는 200원 정도였다. 주민 가운데 전판식 씨의 경우 밭 약 2만 496㎡[31마지기], 집 두 동을 합하여 620만 원을 수령하였으나 목포에서 집을 구하는 데에 850만 원이 소요되어 200만 원 이상의 빚을 안았다. 마을에서 부농이었던 전판식 씨의 사정이 이러하였으니, 셋방을 살면서 어선을 탔던 사람들은 당장의 생계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이들에게는 이사 비용으로 1인당 500원씩이 지급되었다.
또 묘를 이장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다. 마을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묘지 이장비로 10~15만 원씩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새 묘지를 구할 수 없어 자기 돈을 더하여 이장해야만 하였다. 이처럼 나불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과 현실에 맞지 않은 보상금 관계로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은 채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
[결과]
1981년 12월 8일 영산강 하굿둑이 준공되고 이듬해인 1982년 9월 1일 영산호 관광 개발 사무소가 개소되어 본격적으로 관광지 개발이 시작되었다. 1983년 10월 10일에는 교통부 공고 제16호로 영산호 국민 관광지가 지정되었고, 그해 12월 14일 나불도와 계도의 조성 계획이 승인되었다. 그 뒤 1985년 3월 22일 외도 지구까지 추가로 지정됨에 따라 나불도를 중심으로 한 전역이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당시 지정된 규모는 54만 2149㎡[나불도 40만 3306㎡, 계도 3만 3058㎡, 외도 10만 5785㎡]에 이르렀다.
이후 영산호 국민 관광지에는 공공시설로서 관광지 개발과 관리 업무 등을 병행하는 전라남도 영산호 관광 농업 박물관을 비롯하여 공중화장실·취사장·야영장·체육공원·주차장 등이 조성되고, 민간 투자 유치 시설로 농업 협동조합·기념품 매점·식당·호텔·여관·휴게소·예식장 등 각종 위락 시설물이 갖추어져 성업을 이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산호 국민 관광지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였다는 점과 함께, 주변 지역 자원과 연계한 새로운 문화 관광 명소로 등장하여 연간 100만여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산호 국민 관광지가 목포시와 인접하고 전라남도 서남해안의 영암·강진·해남·진도 등지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러한 대규모 개발 사업을 본다면 문제점도 드러난다. 나불도 주민처럼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종류의 이주는 이제껏 형성되었던 그들의 문화·사회 조직·정신세계 등 삶의 형태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으로, 해당 주민의 처지에서 보자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욱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