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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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文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정의]
일제 강점기 목포에서 활동한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조문환(曺文煥)[1907~1949]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영암면 교동리(校洞里)이다. 1927년 신간회 목포 지회 간사를 지냈으며, 청소년의 민족의식 고취 및 청년 운동을 통한 항일 운동에 힘을 쏟았다.
[활동 사항]
조문환은 조선 일보사 목포 지국(木浦支局) 기자로 근무하였으며, 1926년 목포 무산 청년회와 목포 청년 동맹 상무 서기로 활동하면서 청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조문환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장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년 운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1927년 7월 서울에서 조선 소년 연합회(朝鮮少年聯合會)가 세워질 때 창립 준비 위원으로 참가하였으며, 중앙 집행 위원 및 조사 연구부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민족 통일 전선체인 신간회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목포 지회 설립에도 힘을 쏟아 간사로 활약하였다.
조문환은 1928년 8월 광주에서 개최된 전남 소년 연맹(全南少年聯盟) 간담회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경에 체포되기도 하였으며, 1928년 12월 고려 공산 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목포 야체이카[공산당 조직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러시아어] 소속으로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문환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