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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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玄宗植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11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민 |
건립 시기/일시 | 1902년 - 영암현종식가옥 안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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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7년 - 영암현종식가옥 안 사랑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2월 7일 - 영암현종식가옥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현종식가옥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암현종식가옥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117-3 |
성격 | 가옥 |
양식 | 팔작지붕 와가 및 민도리식[안채]|팔작지붕 와가 및 민도리식[안 사랑채]|솟을 형식[문간채] |
정면 칸수 | 6칸[안채]|5칸[안 사랑채]|5칸[문간채] |
측면 칸수 | 4칸[안채]|2칸[안 사랑채]|1칸[문간채]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현희선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가옥.
[개설]
영암현종식가옥(靈巖玄宗植家屋)은 근대기 호남 지역의 최대 부호였던 현준호[1889~1950]의 부친 현기봉(玄基奉)이 지었다. 현준호는 몇몇 지역 유지와 함께 1920년에 순수 민족 자본으로 호남 은행을 설립하였고, 그의 부친도 목포 창고 금융 회사를 설립한 전라남도의 대표적 기업가였다.
[위치]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의 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의 경제력이 말해 주듯이 집터가 매우 넓고, 남서향 방향이다.
[변천]
영암현종식가옥 안채는 ‘성상 39년 임인(聖上三十九年壬寅)’이란 상량문이 있어 1902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안 사랑채는 안채와 상당한 시간차를 두어 1967에 건립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바깥사랑채는 당시 상류 주택의 격식과 경제적 여건 등으로 보아 안채와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간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영암현종식가옥은 종으로 긴 대지 앞쪽에 문간채를 두고 그 다음에 바깥사랑채, 그리고 안채는 약간 축을 달리하여 우측 상단에 앉혔다. 이러한 앞쪽에 남성 영역, 후면에 여성 영역을 두는 배치 형식은 20세기 전후 영암 지역에서 나타나는 상류 주택의 전형적인 배치 규범이다. 현대에 건립된 안 사랑채는 배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으나 조선 시대에도 안채 가까이에 자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4칸의 ‘H’ 형 팔작집이다. 살림집으로는 매우 독특한 유형인데 어떤 연유로 이러한 구조가 채택되었는지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내부는 몸채격인 중앙에는 각 두 칸씩 온돌방과 대청이 있고, 좌측 날개에는 부엌과 헛간, 정지방[정주간]이 있다. 우측 쪽은 중층 개념으로 하부에 광을 두고 그 위로 대청과 방을 드렸다.
안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전후좌우 모두에 퇴를 두었다. 내부는 크게 겹집 형식으로 부엌, 침실, 안대청 등의 실들로 꾸며져 있다.
문간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솟을 맞배집이다. 내부는 정중앙 한 칸을 통로로, 나머지 칸은 헛간과 방으로 꾸미었다.
[현황]
근대기에 지어진 가옥 치고는 비교적 변화가 많은 집이다. 현재 안채는 별도로 현행주 가옥으로 독립되어 있고, 주변 담장도 곳곳이 훼손 내지 변형이 되었다.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암현종식가옥은 근대기 상류층의 독특한 가옥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안채의 평면 구조는 도산 서원, 농운 정사, 장흥 장천재 등의 조선 시대 서당이나 정사 등 강학용 건물에서 주로 보이는 유형으로 주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