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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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文昶集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6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민 |
건립 시기/일시 | 1613년 - 영암문창집가옥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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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8년 - 영암문창집가옥 문간채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6월 1일 - 영암문창집가옥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문창집가옥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암문창집가옥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612 |
성격 | 가옥 |
양식 | 팔작지붕 와가 및 민도리식[안채]|팔작지붕 와가 및 민도리식[사랑채]|솟을 형식[문간채] |
정면 칸수 | 5칸[안채]|5칸[사랑채]|3칸[문간채] |
측면 칸수 | 1칸[안채]|1칸[사랑채]|1칸[문간채]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문창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상류 가옥.
[개설]
영암문창집가옥(靈巖文昶集家屋)은 1613년(광해군 5)에 애송당(愛松堂) 문익현이 건립하여 전해 내려오는 고가(古家)로 2013년 현재 14대째 대물림되고 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영암 지방의 전통 가옥이다. 영암문창집가옥은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마을 입구에 있는 장암정 후면 골목길 가의 평탄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영암문창집가옥은 1613년에 현재 위치에 처음 터를 잡았으나, 지금의 건물은 현 거주자 문창집의 5대 조부인 문병효(文秉孝)[1795년생]가 새롭게 중건한 것이다. 정확한 중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개략 19세기 중엽쯤으로 여겨진다. 한편 사랑채 건물은 본래 지금의 가옥 자리가 아닌 문익현의 증손인 문창혁(文昌爀)의 묘 자리에 있었던 ‘애송정(愛松亭)’이란 건물이었으나, 문창혁의 유언에 의해 애송정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그 자리에 문창혁의 묘를 썼다. 애송정의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문간채는 1939년경에 허물어져 1968년에 지금의 위치에 새로 지었으며 본래의 위치는 안채 앞쪽이었다.
[형태]
영암문창집가옥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전후로 반 칸 퇴]의 팔작집이다. 내부는 우측으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 그리고 맨 끝 칸에는 건넌방과 안광을 앞뒤로 드렸다. 안방과 대청 앞 퇴에는 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2고주(高柱) 5량 가구(架構)의 납도리집이다. 대청 전면에는 ‘널출문’이라고 하는 좀 독특한 형식[상부에 정자살, 하부에 판재]의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안방에는 외여닫이 출입문 옆에 ‘봉창’이라고 하는 작은 창을 내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전후로 반 칸 퇴]의 일자형 팔작집이다. 내부는 맨 우측에 3면이 개방된 대청을 두고 그 다음으로는 방 3개가 나란히 있다. 그리고 맨 끝으로는 광이 있는데 이곳은 본래 외양간 자리였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2고주 5량 가구의 납도리집이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 납도리집이다.
[현황]
전반적으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안채의 부엌 부분이 방으로 크게 개조되어 있고 부엌은 입식으로 후면에 새로 드렸다. 그 과정에서 앞쪽 입면도 크게 변형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암문창집가옥은 초창 연대로 보면 약 400년이 된 조선 후기 무렵의 가옥이다. 후대에 여러 차례의 중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영암 지역에서 수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조선 시대 건축물이란 점에 우선 그 가치가 있다. 특히 19세기 중수의 범위가 평면 구조의 변경이 아닌 단순한 부재 교체나 번와 수준이었다면 문창집 가옥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