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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달사 장군과 장독골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783
한자 梁達泗將軍-
이칭/별칭 양달사와 장독골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
집필자 정성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 「양달사 장군과 장독골샘」,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양달사와 장독골샘」으로 수록
관련 지명 「양달사 장군과 장독골샘」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지도보기
성격 전설|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양달사|양서정|의병|왜구
모티프 유형 새 우물 발견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전해 오는 샘 이름에 얽힌 이야기.

[개설]

「양달사 장군과 장독골샘」은 조선 시대 무신인 양달사(梁達泗)[1519~1555]가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울 때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군령기를 꽂은 장소에서 물이 솟아 대승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양달사는 1519년(중종 14) 영암군 도포면 봉호정(鳳湖亭)에서 태어났다. 양달사의 부모는 제주 주부(注簿)를 지낸 양승조(梁承祖)와 청주 한씨이다. 양달사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해남 현감을 지내다가 1555년(명종 10) 어머니 청주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시묘를 위해 낙향했다.

이 당시는 왜구가 남해안에서 기승을 부리던 때이다. 1555년 5월에 왜구가 60척의 병선을 이끌고 달량진(達梁鎭)[지금의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쳐들어왔다. 영암 군수 이덕견(李德堅)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항복하였다.

봉호정에 있던 양달사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사촌 동생인 부제학 양서정에게 사람을 보내 상의하였다. 양서정은 “충효일체(忠孝一體)이거늘 어찌 가만히 있으시렵니까?”라는 답장을 보냈다. 양달사는 곧바로 형 양달수, 동생 양달해, 양달초와 함께 의병을 모집해서 영암읍으로 진격하였다.

3일간의 격전 끝에 적에게 포위된 의병은 군량미와 마실 물이 떨어져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 급격히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지켜보던 양달사는 장독[군인들의 기(旗) 중 장군 표지기]을 높이 들고 한 번 호령을 한 뒤 땅에 내리꽂았다. 그러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깃발을 꽂은 자리에서 물줄기가 솟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군사들은 솟아오르는 물로 갈증을 해소하고 사기가 충천하여 왜적과 싸워 크게 이겼다. 이때부터 이 샘을 장독골샘이라 불렀다. 장독골샘장독샘 또는 장군정(將軍丼)으로도 불린다.

[모티프 분석]

「양달사 장군과 장독골샘」은 ‘새 우물 발견’을 모티프로 한다. 물과 관련된 설화는 개인이 병을 고치는 약수나 온천을 발견하는 이야기, 마을 사람들이 식수를 발견하는 이야기로 나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는 「스님이 알려 준 우물 자리」가 있는데 양달사가 ‘스님’을, 의병이 ‘마을 사람들’을 대신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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