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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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三一運動記念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윤미 |
건립 시기/일시 | 1984년 4월 10일 - 영암 3·1 운동 기념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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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영암 3·1 운동 기념비 - 전라남도 영암읍 동무리 영암 공원 내 |
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조극환 등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4.8m[높이] |
소유자 | 영암군 |
관리자 | 영암군|국가보훈처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관리 번호 53-1-10]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동무리에 있는 현대 3·1 운동 기념비.
[개설]
영암 지역의 3·1 운동은 1919년 영암읍에 거주하던 조극환(曺克煥) 등이 중심이 되어 거사를 준비하고, 4월 10일 실행에 옮겼다. 약 1천여 명의 지역민들이 회사정(會社亭) 광장에 모였으며,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 만세를 부르며 거리 행진에 나섰다. 이 날의 시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25명의 애국지사들이 옥고를 치렀다. 영암 3·1 운동 기념비(靈巖 三·一 運動 記念碑)는 이러한 영암 지역의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건립 경위]
1919년 4월 10일 영암에서 전개된 3·1 독립 만세 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이와 관련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자 기념비 건립 위원회[위원장 김준혁]가 동아 일보사와 공동으로 건립하였다. 동아 일보사의 3·1 운동 유적지 기념비 건립 사업의 후원을 받아 건립되었으며, 1984년 4월 10일에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위치]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영암 공원 내에 세워져 있다.
[형태]
위 폭이 약간 좁아지는 일자형 수직 형태 기념물로 높이 4.8m 규모이며,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상부 좌우로 용 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단 정면에 ‘만세(萬歲)’, 하단에는 ‘영암 삼일 운동 기념탑(靈巖三一運動紀念塔)’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하단 좌우 면에는 비의 건립 내력을 소개한 비문과 취지문이 있으며, 비의 뒷면 하단에는 영암 3·1 운동과 관련된 의사 25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김영중(金泳仲)이 조각하고, 이희승(李熙昇)이 비문을 작성하였으며, 글씨는 김상필(金相筆)이 썼다.
[현황]
영암 3·1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영암 공원은 영암군청 뒤편에 조성되어 있으며, 주변에 각종 체육 시설물 등이 설치되어 있어 군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관리번호 53-1-10]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고, 기념비 바로 옆에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영암 3·1 운동 기념비는 전국의 3·1 운동 사적지에 조성된 기념비 중 하나로 영암 지역 3·1 운동 정신을 전승하기 위한 상징물로 가치가 있다. 특히 건립 논의가 있을 당시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출신인 재미 교포 민승연이 기녑비 건립을 위해 써 달라며 100달러를 동아 일보사에 기탁했을 정도로 지역민들의 관심도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