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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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地區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9월 5일 - 영천지구 전투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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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0년 9월 13일 - 영천지구 전투 종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 영천지구 전투 장비 등을 전시한 국립영천호국원 조성 |
발생|시작 장소 | 영천지구 전투 - 경상북도 영천시 일대 |
추모비/일시 | 영천지구 전승비 -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
추모비/일시 | 영천지구 전승비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
현충시설 | 국립영천호국원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산3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국군 제2군단 |
[정의]
1950년 9월 5일부터 9월 13일까지 경상북도 영천시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개설]
국군 제2군단 예하 제8사단 및 증원 부대들이 영천을 점령한 북한군 제15사단을 9일 간의 공방전 끝에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한 전투다. 이 전투를 계기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적 배경]
1950년 북한군 제2군단은 8월 공세에서 구미~다부~대구 축선(軸線)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자, 8월 20일 예하의 제15사단을 의성을 거쳐 영천 동북방 입암리로 이동시켜 제73독립연대와 제103치안연대에게 전차 12대 및 각종 포 166문을 지원하고 공격을 준비하였다.
영천이 북한군에 점령될 경우 국군 제1군단과 제2군단이 분리되고, 낙동강 동서 보급로가 차단될 수 있었다. 또한 북한군이 대구 방면으로 진출하면 왜관과 다부동 일대 국군과 미군 후방 방어선이 차단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고, 적이 경주 방면으로 진출해 북한군 제12사단이 합세할 경우 부산이 위협받을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경과]
북한군은 8월 공세 이후 보현산 일대 국군의 방어 태세가 취약한 점을 간파하고 제2군단 예하 제15사단을 죽장-영천 방면으로 투입하여 기습적으로 영천을 점령한다.
북한군은 5개 연대 병력 1만2천여 명, 전차 12대, 곡사포 56문 화력으로 영천을 공격했으며, 이에 국군은 7개 연대 1만5천여 명의 병력과 곡사포 26문, 대전차포 6문으로 맞섰다.
국군 제2군단은 제8사단을 금호강변에 배치하여 북한군 제15사단의 돌파 확대를 저지했으며, 제7사단과 증원한 2개 연대를 투입하여 사흘간의 교전 끝에 영천 탈환 및 자천과 372고지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9월 6일부터 9월 8일까지 국군 제8사단과 북한군 제15사단 사이의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영천 북쪽에 배치된 국군 제21연대가 적 2개 연대 저지에 성공하고, 국군 제19연대는 적 후방부대와 보급로를 차단했으며, 남쪽에 배치된 제5연대와 제10연대가 영천을 통과하여 이동하는 적 선두부대를 저지하면서 북한군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포위망이 완성되자 9월 10일부터 영천~경주간 도로 남쪽에서부터 반격을 개시하여 4일 만에 9월 공세 이전의 국군 주저항선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군 제12사단과 제8사단은 후방과 측면을 위협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북한군 제8사단은 진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
영천지구 전투에서 국군은 북한군 사살 3,799명, 포로 309명, 전차 5대, 장갑차 2대, 각종 화포 14문, 소화기 2,327정, 차량 85대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반면 국군은 전사 29명, 부상 148명, 실종 4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영천지구 전투에서 한국군은 낙동강 전선 동부 방어에 성공한 반면, 북한군은 전반적인 작전에 큰 차질을 빚어 9월 공세에 실패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북한군 제15사단을 전선에서 후퇴하도록 한 영천 전투는 국군 단독으로 전개한 반격 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것은 물론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8년 창구동에 영천지구 전승비와 1980년 교촌동에 영천지구 전적비를 건립하였고, 2001년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 산3 일대에는 국립영천호국원을 조성하였다. 호국원 내에는 영천 대첩비, 전투 장비 전시장, 충렬당 등을 설치하여 호국정신 고취 및 안보의식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