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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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尙吉 |
영어공식명칭 | Kwon Sanggil |
이칭/별칭 | 자정(子貞),남곡(南谷),근리재(近裏齋),남곡둔옹(南谷遯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610년 - 권상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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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5년 - 권상길 생원시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661년 - 권상길 남별전참봉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74년 - 권상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17년 - 권상길 정경대부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835년 - 권상길 충현사 제향 |
추모 시기/일시 | 1912년 - 권상길 대봉재사 제향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관직|경력 | 남별전참봉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권상길(權尙吉)[1610~167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이다.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화의(和議)를 반대하였다.
[가계]
권상길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貞), 호는 남곡(南谷)·근리재(近裏齋) 또는 남곡둔옹(南谷遯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만호(萬戶)를 지낸 권응당(權應唐)이고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권의범(權宜範)[1558~1624]이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左承旨) 권찬(權瓚)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이겸익(李謙益)의 딸이다.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 홍종해(洪宗海)의 딸이다. 아우로 권상임(權尙任)[1622~1700]이 있다.
[활동 사항]
1635년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의 어가(御駕)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의 의지를 피력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조정에서는 화의와 척화(斥和)의 의견으로 양립되었다. 권상길은 정온(鄭蘊)[1569~1641]과 함께 최명길(崔鳴吉)[1586~1647]의 주화(主和)에 적극 반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화가 체결되고 말았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분개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향리에서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읽고 후학을 기르며 이휘일(李徽逸)[1619~1672]과 교유하였다. 1661년(현종 2)에는 남별전참봉(南別殿參奉)을 제수받고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광릉(光陵)으로 향하던 중 멀리서 삼전도의 비문을 보고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향촌에 은거하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집중하였다.
[학문과 저술]
권상길의 현손 권조(權照)가 권상길의 글을 모아 1826년(순조 26) 『남곡집(南谷集)』을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묘소]
권상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17년(순조 17)에 이조참의의 진정으로 정경대부(正卿大夫)에 추증되었다. 1835년(헌종 1) 충현사(忠賢祠)에 제향되고 1847년(헌종 13) 충현사가 대봉서원(大峯書院)으로 개칭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12년 대봉재사(大峯齋舍)로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