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두갑(金斗甲)[?~1909]은 이강년(李康秊)[1858~1908]이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이강년이 체포된 뒤에는 의진의 지휘권을 인계받은 김상태(金尙台)[1864~1912]의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김두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봉정(金鳳政)[?~1909]은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재기한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이다. 이강년이 순국한 후에는 중군장이었던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김봉정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김봉정은 1905년 을사늑...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수갑(金守甲)[?~1909]은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투신하여 활동하다 이강년이 순국한 뒤에는 김상태(金相台)[1864~1912] 의진에서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수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김수갑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치순(金致順)[?~1909]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과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이다. 김치순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 거주하였다. 김치순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 되고,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침략이 갈수록 심해지자, 충청북도...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영구(尹永九)[?~1909]는 1907년 정미의병기에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순국하였다. 윤영구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윤영구는 1907년 이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참여하여 충청북도 제천·영...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영석(尹永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윤영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윤영석은 1907년 고종 황제가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마저 해산되자, 충청북도 제천에서 창의한 이강년 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우석(尹遇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윤우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에 따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이에 반발한 많은 군인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이때 이강년은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