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68 |
---|---|
한자 | 槿友會榮州支會 |
영어공식명칭 | Yeongju Branch of Geunuho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명근 |
[정의]
1929년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설립된 근우회 소속 지회.
[개설]
근우회(勤友會)는 1927년 5월에 결성된 신간회(新幹會)의 자매기관으로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이라는 과제를 목표로 활동하던 단체였다. 근우회 영주지회는 1929년 4월 2일 신간회 영주지회 강당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
근우회는 조선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목표로 하였는데, 근우회 영주지회도 이에 따른 민족운동과 여성운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근우회 영주지회는 경성(京城)에서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정칠성(丁七星)이 파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설립이 구체화되어 1929년 4월 2일 창립대회를 개최하였다. 근우회 영주지회 임시집행부 의장 정칠성, 서기 임계순(林癸順) 등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되었으며, 1929년 5월 14일에 근우회 영주지회 임시집행부 의장 김경희(金璟熙), 서기 정찬자(鄭讚慈)로 체제로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근우회 영주지회는 서무재정부·조직선전부·조사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초대 위원장인 정칠성은 영주 지역의 여성이 아니라 근우회 본부에서 파견된 인물이었다. 당시 영주는 경북에서도 여성운동이 가장 미약한 곳이고 청년운동도 초보 단계였기 때문에 경상북도에서 가장 늦게 설립되었다. 따라서 근우회 영주지회 설립 과정에서 신간회 영주지회와 영주청년동맹의 많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근우회 영주지회의 주요 사업은 결의된 안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근우회 영주지회는 교양 문제·부인 야학·강좌 강습·아동보호와 교양·사회문제[인신매매 폐지, 미신 타파, 조혼 폐지, 남녀 차별 철폐, 구역반 조직] 등을 운영 목표로 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 ‘구습을 타파하자’라는 주제로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현황]
근우회 해소론이 1931년 2월부터 제기되는데, 이때에는 더는 근우회 영주지회의 활동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침체한 상태였다. 1931년 5월 신간회가 해소되자, 근우회도 해소 준비에 들어갔으나 공식적인 대회를 열지 못한 채 해체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여성운동 및 민족운동 단체인 근우회 영주지회가 영주 지역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설립되고 활동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