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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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榮州榮州洞石造如來立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Standing Buddha in Yeongju-dong, Yeongju |
이칭/별칭 | 영주리 석불입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 7[가흥동 2-69]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박병선 |
출토|발굴 시기/일시 | 1917년 -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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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6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 보물 재지정 |
현 소장처 |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 -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 7[가흥동 2-69] |
출토|발견지 |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 -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
성격 | 불상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 높이 239㎝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영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개설]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榮州榮州洞石造如來立像)은 영주시 가흥동의 영주선비도서관 광장에 세워져 있다. 하나의 긴 자연석 석재를 이용하여 광배, 불상, 대좌를 조각하였다. 1917년 영주군 영주면 남산들 제방 공사 중에 발견되어 영주중앙초등학교 앞 도로 중앙에 두었다가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은 원래 어디에 위치하였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눈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의 크기는 239㎝로 현재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보호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작은 기와집으로, 벽면은 없고 4개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낮은 목책이 이어주는 구조이다.
지표면 위에 다듬은 석재로 한 단의 하층 기단을 쌓고, 그 안쪽으로 바닥을 전돌로 깔았다. 전돌 위에 석재로 두 단의 상층기단을 쌓아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을 봉안하였다. 목책 안 불상의 오른쪽 앞에는 ‘영주리석불입상’이 새겨진 석비가 있고, 왼쪽에는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의 대좌로 사용되었던 연화대좌가 놓여 있다. 석비는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렵고, 하대석으로 추정되는 대좌도 일부 파손된 흔적이 보인다. 불신과 광배, 대좌를 한 돌에 새겼으며 당당한 체구에 남성적인 모습을 한 불상이다.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 표면의 마모로 인하여 세부 표현의 확인은 어려움이 있다. 방형에 가까운 살이 오른 상호(相好)에 머리에는 넓은 삼산보관(三山寶冠)을 썼는데 면마다 꽃이 장식되어 있고 이마에는 두 줄의 띠를 돌리고 있다. 사각형의 얼굴에 강직하고 힘찬 모습은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可興洞磨崖如來三尊像)[보물 제221호]의 협시보살과 같은 기풍을 보인다.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의 눈은 패어 버렸지만 코에서 입가로 8자 형을 판 것에서도 남성적인 힘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귀는 길게 내려 어깨에 닿았고 목의 삼도(三道)는 두 가닥의 선으로 간략하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바른 손은 가슴까지 들고 있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며 왼손은 내려 천의를 잡고 있다. 팔은 살이 쪄서 통통한데 드러난 발목과 특히 발의 힘 있는 표현은 이 보살상을 한층 박력 있어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신체는 양감이 없이 평면적으로 표현되었고, 넓적다리 윗부분을 제외하면 신체의 굴곡이나 입체감이 전혀 없다. 천의는 통견이고 유려한 맛은 없으나 각각의 주름마다 힘이 넘친다.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인데 선이 아주 날카로우며 두광과 신광을 두 개의 요선으로 구획 지었고 그 외부는 화염문으로 채웠다. 두광과 신광을 묘사한 철선에는 대칭적인 화문을 그렸고, 두광에는 연화문을 그렸다. 대좌는 상대에 연화문이 조금 보이나, 거의 판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징]
일반적인 보살상은 상반신이 나형(裸形)이고 신체에 목걸이와 영락(瓔珞) 장식을 가득 걸치는 것인데 비해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은 불상처럼 법의를 입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왼쪽 겨드랑이로 내려뜨린 띠 매듭 표현은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불여래좌상(慶州南山茸長寺谷石造如來坐像)[보물 제187호]을 비롯하여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보물 제328호] 등 신라 중대의 불상 조각에서 간혹 나타난다. 이는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이 불상의 법의를 입은 보살상으로 불과 보살의 외적 특징이 혼동된 채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의의와 평가]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은 두껍게 신체를 덮은 대의(大衣)나 굵게 흘러내린 옷 주름, 살이 오른 양감 표현 등에서 영주시, 봉화군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