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464
한자 鳳棲樓
영어공식명칭 Bongseoru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회헌로807번길 104[지동리 535-1]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태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24년 - 봉서루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0년 - 봉서루 중수
이전 시기/일시 2007년 - 봉서루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서 순흥면 지동리로 이건
현 소재지 봉서루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회헌로807번길 104[지동리 535-1]지도보기
원소재지 봉서루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회헌로807번길 104[지동리 535-1]
성격 누각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영주시
관리자 영주시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립된 누각.

[개설]

봉서루(鳳棲樓)는 1930년 중건하여 일제강점기 때 순흥면사무소로 사용되었다. 2007년에 철거한 후 옛 자리인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에 옮겨 다시 중건하였다.

[위치]

순흥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순흥초등학교를 지난 뒤, 회헌로를 타고 약 900m 직진하면 ‘봉서루’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214m 정도 직진하면 왼쪽 울창한 소나무 사이에 봉서루가 있다.

[변천]

봉서루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안축(安軸)이 쓴 「봉서루중영기」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때 고쳐 지었다고 한 것을 보아 적어도 고려 말에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민왕이 흥주도호부 관아에 잠시 머물 때 「봉서루」와 「흥주도호부아문(興州都護府衙門)」을 남겼는데, 현재 소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풍기군 고적 항목을 보면 “봉서루순흥부에 있었는데, 지금은 황폐되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봉서루는 조선 전기에 이미 황폐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옛터에 새롭게 건립되어 자리를 지키다 1824년 중건하였다. 1927년 3월에 순흥공립보통학교를 증축하다 불이 나면서 교실로 사용하던 봉서루를 지금의 순흥면행정복지센터 자리[영주시 순흥면 읍내리]로 옮겼다. 당시 면사무소 건물이 낡아 봉서루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막아 순흥면사무소 건물로 사용했다. 봉서루는 순흥면사무소를 신축한 뒤에 본래의 모습을 찾았으나, 건물의 노후로 2007년 원래 터인 현재 자리로 다시 옮겨 지었다.

[형태]

봉서루는 2층 누각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1층에 낮은 외벌대 기단을 축조하여 원형 주좌를 가진 화강석 초석에 두리기둥의 누하주를 세웠고, 누상에는 청방과 귀틀 그리고 청판으로 우물마루의 2층 바닥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별재의 두리기둥으로 누상주를 세웠다. 전면 좌단 칸에 2층으로 오르내리는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출입하도록 했다. 누상주의 주상부는 사면 1출목 익공으로 꾸몄다. 주간에는 창방을 걸고 주상에는 주두를 놓은 뒤 앙서형의 초익공을 창방과 결구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소로를 놓아 출목두공을 올렸다. 출목두공은 마구리를 사절하고 하단부는 조각한 형태이다. 주두 위에는 주심두공을 놓아 굴도리의 처마도리와 그 밑의 장여를 전·후면에는 대량의 량두, 양 측면에는 충량의 량두와 각기 결구하였다. 익공의 내단은 다소 과장되게 조각한 운공형이고, 창방과 처마도리 밑 장여 사이에는 화반 1구씩을 끼워 보강했다. 양 측면의 어칸에 놓은 화반은 원형이다.

[현황]

봉서루에는 안축이 쓴 「순흥봉서루중영기」와 서성렬이 쓴 「봉서루중수상량문」, 송홍준이 쓴 「봉서루복원기」가 걸려있다.

[의의와 평가]

봉서루는 영남의 3대 누각인 안동 영호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보다 앞서 건축된 누각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 흥주 남정(南亭)으로 한양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배웅 장소로 널리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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