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41
한자 可興一洞潘南朴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Bannam Park Clan's Collective Village in Gaheung1-dong
이칭/별칭 서릿골마을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37가구
인구[남/여] 80여 명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반남 박씨 집성촌.

[개설]

반남박씨(潘南朴氏)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을 본관으로 하고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을 지낸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하는 영주 지역의 세거 성씨이다. 영주시 가흥1동에 있는 자연마을인 서릿골은 인근 한정마을과 함께 반남박씨가 세거하고 있다.

[명칭 유래]

서릿골마을에는 마을 가운데를 통과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었다. 서릿골마을 입구 동수 나무 지점에서 급경사를 만나 얼기설기 얽힌 나무뿌리와 바위 틈새를 굽이칠 때 용솟음 현상이 일어나 물보라가 서렸기 때문에 ‘서리는 계곡’이라고 해서 ‘서릴곡’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좋게 ‘서릿골’이라 부르게 됐다. 그 뒤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유지명을 한자어로 바꿀 때, 서릴 반(蟠) 자와 계곡 곡(谷) 자를 써서 ‘반곡’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서릿골마을은 인근 반남박씨의 세거지인 한정마을에 살던 박정구(朴鼎九)가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박정구는 진사 박문엽의 둘째 아들이다. 박정구는 1748년(영조 24)에 서릿골로 이주해 1758년(영조 34)에 종택을 지었다.

서릿골에는 입향조인 박정구에게 은혜를 갚은 족제비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박정구가 하한정에 사는 형님에게 문안을 드리러 나서다가 물에 빠진 족제비 새끼를 구해주었다. 이후 세월이 흐른 뒤에 박정구의 집 앞에 죽어가는 족제비 한 마리가 찾아와 자신이 박정구가 구해진 족제비임을 밝히며 꼬리털을 바쳤다. 박정구는 이 족제비 꼬리털로 붓을 만들었는데, 손자 박시원(朴時源)[1764~1842]이 그 붓을 사용해 장원급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는 현재도 서릿골 반남박씨 집안의 사람들에게 전해져 족제비를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환경]

서릿골마을이 있는 영주시 가흥1동은 동쪽으로 영주시 휴천동, 서쪽과 북쪽으로는 영주시 안정면, 남쪽으로는 영주시 장수면과 접하고 있다. 서릿골마을은 동쪽을 제외하고 낮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현황]

영주시 가흥1동 서릿골마을에는 반남박씨가 37가구, 8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릿골마을을 개척한 박정구가 지은 반곡종택이 유실되었다가 2008년에 복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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