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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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林氏 |
영어의미역 | Naju 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촌마을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촌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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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동|화양면 |
성씨시조 | 임비(林庇) |
입향시조 | 임훈(林塤) |
[정의]
임비를 시조로 하고 임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나주임씨(羅州林氏)는 고려조에서 벼슬을 지내고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상장군에 오른 임비를 시조로 받든다. 그 후 시조의 9세손 임탁(林卓)이 고려 말에 해남감무를 역임한 후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이 되어 나주 회진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에 따라 후손들은 나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임탁의 8세손에서 갈라져 장수공파·정자공파·절도공파·첨지공파·도정공파 등의 파조가 생겼다.
[입향경위]
나주임씨가 여수에 최초로 입향한 것은 숙종 때로 조사되었다. 백호 임제(林悌)의 현손 임훈(林塤)이 나주에서 여수시 쌍봉동 무선마을로 입향하여 살았다. 그 후 정자공파 임복의 후손인 임토(林菟)가 나주에서 소라면 복촌마을에, 임기(林棋)가 화정면 백야리에 정착했다.
[현황]
현재 임훈의 후손들은 쌍봉동과 화양면에 분거하고 있으며, 임토의 후손은 그대로 소라면 복촌마을에, 임기의 후손은 화정면 개도리 신흥마을과 백야마을, 하화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소라면 덕양리에는 동학혁명을 피해 들어온 나주임씨 후손이 정착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