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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972
한자 南平文氏
영어의미역 Nampyeong Mu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입향시기/연도 임진왜란 때
성씨시조 문다성(文多省)
입향시조 문응지(文應祉)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응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신라 자비왕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한다. 문다성은 남평에서 태어나 고려 말 대장군을 거쳐 삼중대광벽상공신으로 남평백에 봉해졌다. 이에 따라 문다성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게 되었다. 고려 문종 때 풍산군에 봉해진 문익(文翼)을 중시조로 하며,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인 강성군파(江城君派) 가문이 가장 번성했다.

[입향경위]

문익점의 후손 문응지(文應祉)는 임진왜란 때 여수시 웅천동에 들어와 임진왜란 공신 충정공 정대수(丁大水)의 사위가 되었다. 1620년대에 보성에서 처가 고장인 여수시 웅천동 서촌마을에 입향하였으며, 문응지의 후손들은 월앙마을·가곡마을·삼동마을·화치마을·무선마을 등으로 이거했다. 또, 숙종 때는 문두재(文斗載)가 강진에서 화양면 이천리로, 문시백(文時伯)이 장흥에서 화양면 창무리 백초마을로, 문주태(文柱泰)가 월하동 월성마을로, 문만장(文萬長)이 보성에서 율촌면 신풍리로 옮겨와 살았다.

[현황]

입향조 문응지의 후손들은 여수시 웅천동에 살고 있으며, 문두재의 자손들은 화양면 이천리에, 문시백의 후손들은 화양면 창무리 백초마을과 이천리 이대마을, 소라면 현천리에 분거하고 있다. 남면 유송리 함구미에도 남평문씨들이 대를 잇고 있다. 화치동과 중흥동 용성마을에 거주했던 입향조 후손들은 여수산업단지 조성으로 신도시에 분산되어 이주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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