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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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峙洞 |
영어음역 | Hwachi-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치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길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삼일 지역의 북서쪽에 자리한 화치동은 한자의 뜻으로 옮기면 ‘꽃 고개’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꽃 고개는 아름다운 꽃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화치의 옛 이름은 ‘꼬(고)재’라고 하였다. ‘꼬(고)재’는 강이나 바닷가에 튀어나온 지형에 붙게 되는 ‘곶이’라는 말이 변형된 말로, 센소리로 하면 ‘꼬지’나 ‘꼬치’, ‘고치’가 된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꼬(고)’는 ‘꽃 화(花)’로, ‘재’는 훈차(訓借)하여 ‘치(峙)’로 표기하여 ‘화치’가 되었다.
웃몰·상촌·원화치 마을로도 불렸던 화치마을은 『호구총수』에서는 ‘고치(古峙)’로 기록되고 있다. 1997년 통계기록에 232호의 가구가 있었던 큰 마을로, 신안주씨 문중에서 건립한 화산사라는 유교사당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이름난 서당이 있어 뛰어난 한학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한재들·닭뫼·우복산·당산나무등·먹뎅이골 등의 지명이 전해온다.
화치동의 덕암(德岩)마을은 지역의 한가운데에 마을이 있어 ‘중말’이라 부르다가, 많은 전설을 간직한 마을 수호신격인 ‘벙바구’라는 바위를 신성하게 모시면 덕을 받는다 해서 마을 이름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벙바구와 함께 엉굴·산소등·절터골 등의 지명이 있었다.
대나무가 많아 ‘대밭골’이나 ‘대갓뜸’으로 불렸던 죽안마을은 ‘대갓뜸’을 훈차하여 죽안(竹岸)마을이라 하였다. 거북바위와 가물바위·갓녁·도리미산·양달과음달·통새미·질매등 같은 지명이 전해왔다. 연성마을에는 수문통·작은아구지·갈무개 등의 지역이 있었고, 연꽃이 많이 자생하여서 지었다고 한다. 첨산(尖山)마을은 마을 뒤에 솟은 ‘뽈록산’이라고 불렀던 뾰쪽한 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볏짚으로 엮은 이엉을 덮고 쌀뜨물을 바다로 흘려보내 군량미를 쌓아둔 노적가리로 왜적을 속여 사기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첨산과 함께 새덜바구·공솔곶·복숭머리·방조제·제발 등의 땅이름만으로도 해안가 지형임을 알 수 있다.
중방마을은 마을이 제방 가운데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환재마을은 환곡 창고가 있어 환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주변에선 ‘한재골’로 더 많이 불렸다. 용혈마을은 용구미라고도 불렸던 마을로, 마을에 용이 승천하였다고 전해지던 ‘용샘’이 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순천부 삼일면에 속했고,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천군 삼일면이라 칭하였다. 1976년 9월 1일 전라남도 여천지구출장소 삼일면으로 조정되었고, 1986년 1월 1일 여천시의 승격으로 여천시 삼일동으로 조정되었다. 1998년 4월 1일 삼여통합으로 구 삼일면 지역이었던 월내동·중흥동·적량동·화치동·평여동 등이 행정동인 삼일동에 포함되었다.
[자연환경]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북서쪽에 있는 첨산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황]
2022년 9월 6일 기준, 총 10세대에 인구 11명[남자 8명,|여자 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화치동은 서쪽으로 소라면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월하동·중흥동과 인접한 동으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확장으로 마을은 모두 이주하고 2022년 현재는 공단만 있는 상태이며, 망향의 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