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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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麗統合 |
영어의미역 | Merger of Yeosu-si, Yeocheon-si and Yeocheon-g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1997년 9월 9일 주민 투표에 의해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3개 행정구역의 통합.
[배경]
여수 지역 행정구역 통합 논의는 여수상공회의소가 1983년 1월 여수시와 당시 여천지구출장소의 통합 당위성에 대한 용역을 하여 홍보하면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수시 쪽의 일방적인 처사에 격분한 여천지구출장소 관내 유지들이 통합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2월 14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를 개최하여 1995년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전에 인구 10만명 미만의 33개 소도시를 인근 군과 통합하는 도농 통합의 시군 통합을 논의하였다. 정부는 1994년에 제1단계 도농 통합을 위한 준비로 전국 49개 시와 43개 군을 대상으로 3월 24일부터 4월 29일까지 세대당 1표씩 우편 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여수반도는 당초 내무부에 여천시와 여천군의 통합안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수시는 인구 10만명이 넘어 17만명이 되었기 때문에 10만 이하의 도시와 군의 도농 통합안에서 제외된 것이다.
여천시와 여천군 통합안이 전해지자 여수시는 이를 반대하고 여수시가 포함된 통합안을 조정하였다. 그것은 여수시, 여천군 도서 지역과 여천시, 여천군 육지 지역의 통합안이었다. 이 통합안은 여수반도의 3개 행정구역을 2개로 조정하는 것으로 여수반도 대통합의 취지에 비춰볼 때 한걸음 후퇴한 통합안이었다. 여수반도의 삼여 시군을 분리 통합하자는 2원화안이 확정되자 여수시의 사회 단체와 김충조 의원을 중심한 여수시의회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정부, 즉 내무부는 삼여통합안을 제2안으로 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묻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제1차 삼여 시군 분리 통합은 1994년 3월 24일까지 실시하고, 제2차 삼여 통합안은 1994년 4월 30일부터 5월 10까지 실시하기로 확정하였다.
[경과]
1. 제1차 주민 의견 조사
1994년 3월 24일부터 4월 29일까지 37일간에 걸쳐 1세대당 1표의 우편 조사를 실시하였다. 제1차 분리 통합안은 ‘여천시+여천군 육지 지역’과 ‘여수시+여천군 도서 지역’의 통합안에 대한 찬반 의견 조사서를 세대주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고 회수하는 방법으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제1차 삼여 시군 분리 통합 시도는 여천시의 찬성, 여수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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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삼여 시군 분리 통합안에 대한 주민 의견 조사 결과
2. 제2차 주민 의견 조사
여천군의 도서부는 여수시로, 육지부(율촌·소라·화양)는 여천시로 통합한다는 제1안이 부결되자, 제2안인 삼여 시군 통합안이 1994년 4월 30일부터 5월 10까지 11일간에 걸쳐 세대주 우편 투표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여수시의 찬성, 여천시와 여천군의 반대로 제2안의 시도도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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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삼여 시군 분리 통합안에 대한 주민 의견 조사 결과
3. 제3차 주민 의견 조사
1994년 정부는 시군 도농 통합이 무산된 시군에게 또다시 시군 통합을 시도하였다. 주민 의견 조사는 공정성 확보, 비밀 유지,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1994년과 같은 우편 투표 조사 방법은 지양하고 국민 투표나 지방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각 면에 의견 기표소를 설치하여 의견을 기표하도록 하였다. 1995년 3월 21일을 의견 조사 기표일로 정하였다. 개표 결과는 여수시 찬성 97.3%, 여천시 찬성 41.5%, 여천군 찬성 62.2%로 나타나 제3차 삼여 통합 시도도 여천시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4. 1997년 주민 발의 삼여통합안 주민 투표
삼여 통합 시도는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주민 의견 조사를 세 차례에 걸쳐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삼여 지역 주민들은 인근의 통합시인 순천과 광양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좌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또한 행정력과 예산의 낭비, 지역 현안 사업의 지연, 주민 생활의 불편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으며, 1998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한해 앞둔 1997년에 삼여가 통합하지 못하면 영원히 통합하기 힘들어진다는 압박감마저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97년에 들어서면서 삼여 통합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무엇보다 언론 매체의 활동도 컸으나, 사회 단체와 각 정당에 소속된 당직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삼여 시장과 군수가 삼여통합에 합의하고 다음과 같은 통합 조건에 합의하였다.
○ 삼여통합을 위한 6개 이행 사항
① 통합 시청의 위치는 현 여천시청으로 한다.
② 통합 시의회 의원정수는 현 여수시의회 의원정수와 현 여천시군의회 의원정수가 동수가 되도록 조정한다.
③ 여수·여천상공회의소는 여천시로 이전토록 추진한다.
④ 공공 기관 및 사회 단체도 여천시로 이전토록 추진한다.
⑤ 도서 및 농촌 지역의 예산은 현 수준보다 더 증액하여 배정하기로 하고, 여천군에 투자되는 자체 사업비 규모는 국·도비보조사업, 양여금사업을 제외한 총 가용 재원의 30%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다.
⑥ 기타 지역 현안은 현 여천시·여천군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주민 의견 조사 후 지역과 주민 화합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우리 삼여 지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생활권과 문화권이 동일하게 형성되어 있어 가까운 이웃처럼 오손도손 삶을 영위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삼여 시장과 군수는 주민 의견 조사 후 통합 여부를 떠나 그동안 지역과 주민 또는 시민 단체간에 발생된 반목과 갈등을 해소하여 이전과 같이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여 삼여 지역이 공동 번영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1997. 9. 5.
여수시장 김광현
여천시장 정채호
여천군수 주승용
○ 혐오 시설 등 여천군 지역 미설치에 관한 합의서
삼여 시군 통합시 쓰레기 매립장, 분뇨 처리장 등의 혐오 시설이 여천군 지역에 설치될 것이라는 일부 여천 군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하여 삼여 시장과 군수는 다음과 같이 합의서를 작성하여 발표한다.
합의 사항
① 일부 여천 군민이 우려하는 혐오 시설의 설치 문제에 있어 여천군의 분뇨를 1일 여수시에 8톤, 여천시에 2톤을 위탁 처리하고 있으며, 향후 인구 증가 등으로 처리량의 증가시에 대비하여 여천군에 지원된 국비보조금 36억원으로 여천시 분뇨 처리장을 확장하여 사용키로 협의하였으며,
② 공설묘지공원도 여천군 소라면 봉두리에 삼여 시군이 26억을 들여 2015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 중에 있습니다.
③ 쓰레기 위생 매립장의 경우도 여천시의 경우 15년간, 여수시의 경우 24년간 사용키로 되어 있어 통합이 되어도 향후 20년간은 여천군 지역에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할 필요가 없으므로 여천군 일부에서 삼여통합이 되면 여수쪽에서 일방적으로 각종 생활 쓰레기 및 혐오 시설을 여천군에 설치할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며, 일방적으로 혐오 시설을 여천군에 설치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1997. 9.
여수시장 김광현
여천시장 정채호
여천군수 주승용
삼여 시장과 군수는 삼여통합 실무기획단을 출범시키고 삼여통합 주민 의견 조사 실시 건의서를 전라남도지사에게 제출하여 승인을 받고 의견 조사 일정을 1997년 9월 9일로 확정하여 삼여통합 주민 의견 조사를 실시하였다. 삼여통합 주민 의견 조사는 1997년 9월 9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되어 오후 7시까지 실시되어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개표는 저녁 7시부터 삼여 시군 자치단체별로 부재자 기표함부터 시작하여 저녁 12시경에 완료되었다.
삼여통합 찬성을 묻는 조사인 수는 여수시 124,738명(인구 188,452명), 여천시 50,146명(인구 80,156명), 여천군 47,188명(인구 62,357명)이었다. 삼여 시군민들 중 20세 이상 남녀가 여수시와 여천군에 설치된 69개 기표소와 여천시에 설치된 31개 기표소에서 기표를 하였다. 주민 의견 조사 결과는 여수시 찬성 93.5%, 반대 4.3%, 무효 2.2%, 여천시 찬성 83.5%, 반대 16.5%, 여천군 찬성 70.2%, 반대 29.8%로 통합 찬성이 절대적인 우세로 나타났다.
5. 삼여통합에 따른 입법 조치
1997년 9월 9일 삼여통합에 대한 찬반 주민 의견 조사 결과는 응답자 100,397명 중 찬성 86,676명(86.3%), 반대 11,328명(11.2%)으로 나타나 통합이 확정되었다. 1997년 12월 17일 법률 제5457호로 전라남도 여수시 도농 복합 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 법률 제5457호
전라남도 여수시 도농 복합 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지방자치법 제7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전라남도 여수시·여천시 및 여천군을 통합하여 전라남도 여수시를 도농 복합 형태의 시로 설치함으로써 당해 지역에 있어서 주민 생활의 편의를 증진하고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전라남도 여수시의 설치 등) ① 전라남도의 여수시·여천시 및 여천군을 각각 폐지한다.
② 전라남도에 여수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
-시의 명칭: 여수시
-관할 구역: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폐지되는 전라남도 여수시 일원, 여천시 일원 및 여천군 일원.
부칙
제1조(시행일) 이 법은 1998년 4월 1일부터 시행한다.
제2조(일반적 경과조치) ① 이 법 시행 당시 이 법에 의하여 폐지되는 시와 군(이하 ‘폐지시·군’이라 한다)에 설치된 동과 읍·면은 각각 이 법에 의하여 설치되는 시(이하 ‘신설시’라 한다)의 동과 읍·면으로 본다.
② 이 법 시행 당시 폐지시·군의 기관 또는 시설에 소속된 직원은 신설시 소속의 직원이 된다.
③ 이 법 시행 전에 폐지시·군의 시장 또는 군수나 그 소속기관의 장이 행한 처분 기타의 행위는 신설시의 시장이나 그 소속기관의 장이 행한 처분 기타의 행위로 본다.
④ 이 법 시행 전에 폐지시·군의 시장 또는 군수나 그 소속기관의 장에 대하여 행한 처분의 신청·신고 기타의 행위는 신설시의 시장이나 그 소속기관의 장에 대하여 행한 처분의 신청·신고 기타의 행위로 본다.
⑤ 이 법 시행 당시 폐지시·군의 조례·규칙은 신설시의 새로운 조례·규칙이 제정·시행될 때까지 신설시의 조례·규칙으로 보되, 종전에 당해 조례·규칙이 적용되던 지역에 한하여 각각 적용한다.
제3조(신설시 시장 등의 선거에 관한 경과조치) ① 이 법 시행일로부터 1998년 6월 30일까지 공직 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30조 제1항 제3호 및 제35조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폐치·분합에 따른 신설시 시장의 선거는 실시하지 아니하고, 동 기간 중 지방자치법 제89조의 규정에 의하여 지정된 자가 그 직무를 대행하며, 1998년 7월 1일부터 그 임기가 개시되는 신설시 시장의 선거는 임기만료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의 선거일에 실시한다.
② 이 법 시행 당시 폐지 시·군의 시장 또는 군수는 공직 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53조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실시하는 신설시의 시장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다.
제4조(다른 법령과의 관계) ① 폐지 시·군의 지역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구역 또는 관할구역으로 정하고 있는 법령의 적용에 있어서는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당해 법령이 개정될 때까지 신설시의 해당 지역이 당해 구역 또는 관할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② 이 법 시행 당시 다른 법령 중 군 및 군수에 관한 규정은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설시 및 그 시장에 대하여 이를 준용한다.
국회에서 의결된 경기도 안성시 등 2개 도농 복합 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을 이에 공포한다.
1997. 12. 17. 대통령 김영삼
[결과]
전라남도 여수시 도농 복합 형태의 시설치에 관한 법률 부칙 제1조에 의해 1998년 4월 1일 통합 여수시가 개청되었다. 통합 여수시장은 전라남도 여수시 도농 복합 형태의 시설치에 관한 법률 부칙 제3조에 의해 전라남도지사가 지정한 김광현(金光顯) 전 여수시장이 1998년 4월 1일부터 1998년 6월 30일까지 대행하였다. 삼여 통합을 위한 삼여 군수 6개 이행 사항 제1호에 의해 통합 여수시 청사는 구 여천시청으로 사전에 협의되어 개청 행사는 구 여천시 청사에서 개최하였다.
통합 여수시가 발족됨에 따라 여수시는 전라남도 제1의 도시이자 남해안의 거점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여수시는 여수읍에서 승격된 지 49년만에, 여천군은 여수군에서 여천군으로 개명된 지 49년만에, 여천시는 신설된 지 12년만에 없어지고, 여수반도에는 여수시라는 하나의 행정구역이 새로이 출범되었다.
삼여 행정 기구를 합하여 하나의 통합 행정기구를 만들기 위해 ‘통합 여수시 설치 준비단’이라는 한시 기구를 1997년 12월 24일 발족시켰다. 준비단장은 선종륜(宣鍾崙) 전 여수시 부시장을 도지사가 임명했으며, 준비단원은 삼여 시군에서 선발하였다. 준비단에서는 각종 공부 정리, 조례 규칙 정비, 조직 기구 및 정원 조정, 통합 여수시 인사, 개청 행사 준비 등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