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868 |
---|---|
한자 | 申箕善永世不忘碑 |
영어의미역 | Stele for Sin Giseon |
이칭/별칭 | 법부대신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156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호 |
성격 | 비 |
---|---|
건립시기/일시 | 1898년 |
관련인물 | 신기선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57㎝ |
너비 | 32㎝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1566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법부대신 신기선의 비.
[건립경위]
신기선은 갑신정변 후 개화당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고금도와 흥양현 여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갑오개혁 후 법부대신으로 등용되었을 때, 섬사람들이 행정 구역을 정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도재의 건의를 받아들여 완도군, 지도군과 함께 돌산군이 창설되었다. 이때 신기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군민들이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형태]
비좌와 머릿돌을 갖춘 구조이다. 비의 높이는 157㎝이고, 너비는 32㎝이다.
[금석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훈(聖訓)에 말하되 오직 필부필부(匹夫匹婦)도 요순(堯舜)의 혜택을 입지 못하면 미루어서 구중(溝中)에 넣을 것 같다 하니 이형(伊衡)의 천하로서 기임(己任)을 삼은 것은 이제 찬정(贊政) 신공(申公)에서 보았도다. 공이 일찍 해도복사(海島鵩舍)에 있을 때 민정의 질고함을 통실(洞悉)하고 일념이 이에 있었더니 다행히 경장(更張)을 만나 묘당(廟堂)에 선진(宣陳)하여 이 고을을 획성(劃成)하니 운정 이공(李公)으로 더불어 의논치 않아도 뜻이 같은지라.
거군(擧郡)의 여정(輿情)이 다 송덕함이 여일한고로 또한 흥감하여 그의 말을 채용하여 드디어 지(誌)를 만들고 감히 명(銘)하여 말하되 어찌 초탁(楚凙)이 되었는고. 서(嶼)가 도리어 경(慶)이 되었도다. 두(杜)가 비록 불행하였으나 서촉(西蜀)이 오히려 행(幸)이 되었도다. 인(仁)은 오직 물(物)에 밀리고 덕(德)은 반드시 인(隣)이 있는지라 일편의 심단(心丹)은 능히 이 백성을 수함이라. 은혜는 안해(鴈海) 같고 깊은 공은 오잠(鰲岑) 같이 높았도다. 한번 기임으로 생각하니 예나 지금이리로다. 광무 2년 무술(戊戌) 겨울 군수 홍희찬"
[의의와 평가]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어 비석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갑오개혁 당시 지방 행정 구역 개편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