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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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川許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장복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74년 - 양천허씨 입향조 허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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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739년 - 영찬허씨 입향조 허속 사망 |
입향지 | 양천허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 |
입향지 | 양천허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
성씨 시조 | 허선문 |
입향 시조 | 허속(許速)|허곽 |
[정의]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속과 허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연원]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는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 허선문(許宣文)이다. 『양천허씨대동보』에 따르면 허선문은 공암현(孔巖縣)[서울특별시 양천구의 옛 지명]의 부농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견훤(甄萱)과 싸울 때 군량이 떨어져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보고 재물과 곡식을 공급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왕건으로부터 가부(假父)라는 존칭과 함께 공암촌주로 봉해지고 공암현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관향을 공암으로 하였다고 한다.
[입향 경위]
양천허씨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입향조인 허속(許速)[1674~1739]은 허빈(許彬)의 셋째 아들이며, 허빈의 맏아들인 허곽은 장복리 인근의 송석리 백제울로 입향하였다. 허곽과 허속 형제가 송석리와 장복리로 입향한 사유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현황]
양천허씨는 근래까지 대술면 장복리의 대성으로 세거해 왔는데, 1970년대까지 장복2리 마을 인구의 70%가량이 양천허씨였을 정도로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현재는 8호 정도가 살고 있다. 대술면 송석리 백제울에는 근래까지 20호 정도가 모여 살았으며, 아직까지 7호 정도가 남아 있다.
[관련 유적]
양천허씨의 선영인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조도곡[어리논골]에는 허속의 아들인 허취의 묘부터 남아 있으며, 허취 윗대의 묘는 예산읍 수철리 선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