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한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이거 성씨. 경주김씨(慶州金氏)의 기원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에서 시작한다. 김알지는 서기 65년(탈해왕 9) 굴성 서편 계림에서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금궤에서 태어났다. 탈해왕은 기뻐하며 성을 김으로 하사하여 경주김씨가 시작되었다. 김알지가 신라 13대 왕에 즉위하면서부터 신라의 왕성이...
-
정응규를 시조로 하고 정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이거 성씨. 공산정씨(公山鄭氏)의 시조는 고려 충숙왕 때 사람인 정응규(鄭應圭)[?~?]이다. 정응규의 4세손인 정비(鄭庇)가 조선 건국 때 공을 세워 공산군(公山君)에 봉해지면서 계룡산 아래 공산[충청남도 공주시의 옛 지명]으로 이거한 이후 후손들이 충청남도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공산...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기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예산군의 김녕김씨(金寧金氏)는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입향한 김기성(金記星)의 후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녕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시흥은 고려 때 묘청의 난을 진압하면서 공적을 세웠으며 명종 때...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예산군 신암면 일대에 입향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노경은 신암면 용궁리에서 추사 김정희를 낳았으며, 1809년(순조 9) 동지부사의 직책으로 연경에 갔을 때, 아들 김정희가 수행하도록 하여 옹방강, 완원과 같은 거유와 접촉하고 금석학...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연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김려(金鑢)[1766~1821]는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 출신이었지만 당쟁의 화를 입어 생애를 대부분 유배지에서 보냈고 유배지에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시문과 저서를 남겼다. 김려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이다. 할아버지는 김희(金喜),...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부터 일본통사로 활동하였으며, 1811년부터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로 대마도에 가서 임금의 국서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이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1836년(헌종 2...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부마이자 문신. 김한신(金漢藎)[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별사전(別賜田)으로 하사받아 집[지금의 김정희 선생 고택]과 아버지의 묘소를 짓고, 경주김씨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하였다. 김한신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유보(幼...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
-
서한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대구서씨(大丘徐氏)의 시조는 고려 때 조봉대부(朝奉大夫)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낸 서한(徐閈)[?~?]이다. 후손들이 예산군 대흥면 하탄방리에 세거하고 있다. 대구서씨는 고려 때 조봉대부 군기소윤을 지낸 서한을 시조로 한다. 대구서씨는 2~6세 때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세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데...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박안행(朴安行)[1578~1656]은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등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박안행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지(聖之), 호는 석곡(石谷)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형조참판을 지낸 박광영(朴光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귀후서별제를 지낸 박조(朴藻)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이다....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병덕(徐秉德)[1712~180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11년(순조 11) 궤장을 하사받고 기사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손들이 서병덕의 영정, 요대, 옥배 등을 보관하고 있어서 조선 후기의 사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병덕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유호(攸好), 호는 주은(酒隱), 시호는 정익(靖翼)...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해조(徐海朝)[1689~177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예산군 광시면 구례리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서해조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종지(宗之), 호는 구구재(九九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효적(徐孝積)이며, 할아버지는 서필행(徐必行)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서욱(徐욱)이며, 어머니는 박율(...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성수묵(成遂默)[1792~1850]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성취(聖就) 또는 성집(聖執),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승지 성범석(成範錫)이며, 할아버지는 현감 성덕구(成德求)이다. 아버지는 부사 성긍주(成肯柱)이며, 어머니는 이두원(李斗源)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문신. 신계영(辛啓榮)[1577~166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문인으로서 예산의 정경과 생활을 노래한 가사 「월선헌 십육경가」를 지었다. 신계영의 본관은 영산(靈山)이며 자는 영길(英吉), 호는 선석(仙石),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신종원(辛宗遠)이며, 어머니는 남양...
-
강지연을 시조로 하고, 강효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신천강씨는 강지연(康之淵)[?~?]을 시조로 삼고 있다. 강지연은 고려 명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몽골 침략으로 강화로 천도할 때 왕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고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신성은 신천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안동 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으로, 신라 말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견훤의 후백제군과 싸워 이겨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은 본래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 성과 안동(安東)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권...
-
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충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양주조씨(楊州趙氏) 시조는 조잠(趙岑)[?~?]으로, 고려 때 양주의 호장이었으며 판중추원사에 증직된 인물이다. 양주조씨는 조선 초 조잠의 증손자 대부터 평공파(靖平公派)·문강공파(文剛公派)·제학공파(提學公派)·강화공파(江華公派)로 분파되었...
-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속과 허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는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 허선문(許宣文)이다. 『양천허씨대동보』에 따르면 허선문은 공암현(孔巖縣)[서울특별시 양천구의 옛 지명]의 부농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견훤(甄萱)과 싸울 때 군량이 떨어져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보고 재물과 곡식을 공...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항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이거 성씨.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시조 이무(李茂)는 서기 660년 소정방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신라 무열왕 7년[660년] 백제를 토평한 공훈으로 연안후(延安侯)에 봉하고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신라에 귀화하여 시염성(豉鹽城)[황해도 연안군의...
-
신경(辛鏡)을 시조로 하고 신후담(辛厚聃)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이거 성씨.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1145년(인종 23)에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오른 신경(辛鏡)[?~?]이다. 신경의 호는 엄곡(嚴谷)이며, 시호는 정흠(貞歆)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현 경상남...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신.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덕산현 장천리 일대[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세거한 여주이씨 가문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1801년 조카 이승훈 등과 함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이가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성호...
-
충청남도 예산에 문집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숭록대부에 올랐다. 문집인 『석루유고(石樓遺稿)』 목판본이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아버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사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경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집(...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길유(李吉儒)[1714~1783]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방어사·수군절도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이길유의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자는 사적(士迪)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국형(李國馨)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이길유는 1714년(숙종 40) 지금의 예산군 봉산면...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덕성(李德成)[1655~170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언·지평·관찰사·동지부사·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부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덕성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득보(得甫), 호는 반곡(盤谷)·지비자(知非子)이다.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무신. 이목(李穆)[1599~1624]은 이괄(李适)의 난 때 적의 동태를 살피다 잡혀 협조하지 않고 죽은 충신이다. 이목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명원(明遠)이다. 아버지는 정사공신(靖社功臣) 이의배(李義培)이다. 이목은 지금의 예산군 삽교읍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어서 장차 무장이 되기 위하여 무예...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사관(李思觀)[1705~177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조의 대리청정 기간 때 우의정으로서 정조를 보필하였다. 이사관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숙빈(叔賓), 호는 장음(長陰), 시호는 효정(孝情)이다. 아버지는 종성부사를 지낸 이기성(李基聖)이며, 어머니는 김유(金洧)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이기한(李基漢)의...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여발(李汝發)[1621~168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함경도·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어영대장을 지냈다. 이여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한천부원군(韓川府院君) 이의배(李義培)이고, 아버지는 한원군(韓原君) 이목(李穆)이며, 어머니는 현령 김희온(...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인. 이용휴(李用休)[1708~1782]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이다. 아버지는 이침(李沈)이고, 어머니는 조구석(趙九錫)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이며, 부인은 유헌장(柳憲章)의 딸 진주유씨(晋州柳氏). 이가환(李家煥)이 아들이다. 이용휴는 1708년(숙종 34) 덕산 장천리...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의배(李義培)[1576~1637]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병자호란 때 전사하였다. 이의배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의백(宜伯),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俊)이고, 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의 딸 여흥이씨(驪興李氏)이다. 이괄(...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 이재위(李草稿)[1745~1826]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어휘집 『물보(物譜)』를 편찬하였다. 이재위의 본관은 여주(驪州). 할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이며, 아버지는 이가환(李嘉煥)이다. 이재위는 1745년(영조 21) 덕산 장천리[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가환과 더불어 만물의 품성은 인류...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시원(田始元)[1677~1733]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대숙(大叔)이다.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어머니는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6세손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아들 네 명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경상병사를 지낸 전운상(田雲祥), 둘째 아들은...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운상(田雲祥)[1694~1760]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전라좌수사로 재임 시 해골선(海鶻船)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전운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사룡(士龍), 호는 자천(紫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1700~1753]은 무과에 급제한 뒤 나주영장, 삼척영장, 전라우수사, 죽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희중(羲仲), 호는 석천(石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亭...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윤정과 이예립 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조선 왕실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인 이한(李翰)[?~?]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고 문성왕 때 사공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이한의 선대가 언제부터 전주에서 세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후손 중에서 조선을...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정만석(鄭晩錫)[1758~1834]은 조선 후기의 예산 출신 문신으로,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만석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성보(成甫), 호는 과재(過齋),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하경(鄭夏卿)이고 할아버지는 정유신(鄭維新)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정기안(鄭基安)이며, 어머니는...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정치방(鄭治邦)[?~?]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宗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참판에 증직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공산정씨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기묘사화 이후 정빈(鄭濱)[?~?]이 고덕면으로 입향한 이후이다.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정빈의 아들 정치방(鄭治邦)[?~?]이 인조반정 이후 공주에서 이...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사헌부장령에 이르렀으며, 효행과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곤(趙鵾), 할아버지는 조흥무(趙興武)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치림...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복양(趙復陽)[1609~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제학·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복양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며,...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사석(趙師錫)[1632~1693]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왕세자 책봉 하례에 참석하지 않은 죄로 고성(固城)에 유배되어 사망하였다. 조사석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공거(公擧), 호는 만회(晩悔) 또는 만휴(晩休)·향산(香山)·나계(蘿溪)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趙翼)[1579~1655]은 임진왜란 중 음보로 군량미를 운송한 공을 세우고 1602(선조 35)년 별시문과로 관직에 진출하여 한성부우윤,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55년에 졸하였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구(趙泰耈)[1660~172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글씨를 잘 썼고, 양전(量田) 등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산법(算法) 관련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조태구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덕수(德受), 호는 소헌(素軒)·하곡(霞谷),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할아버지는 병조판서...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선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고구려 때 병마도원수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는다. 강이식은 598년(영양왕 9) 병마도원수로 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요서 지방에 출정해 공을 세웠고 수나라 문제의 30만 대군을 맞아 임유관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진주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흔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시조는 고려 때 호장중윤을 역임했던 성인보(成仁輔)이다. 호장부정을 지낸 성숙창(成淑昌)의 아들이다. 당나라의 학사 성경(成鏡)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정착하였는데, 성경의 후손이 번성하여 창녕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창녕성씨는 고려 때 성공필(成公弼)과 성한필(成漢...
-
현덕유를 시조로 하고 현석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원현씨(昌原玄氏)는 연주현씨(延州玄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이다. 시조 현덕유(玄德裕)는 연주현씨의 시조 현담윤(玄覃胤) 셋째 아들로 1186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이부(吏部)와 예부(禮部)의 시랑(侍郞)을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로 나갔다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참지...
-
황충준을 시조로 하고 황언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예산군의 창원황씨(昌原黃氏)는 호은(湖隱) 황언원(黃彦源)이 말년에 응봉면 입침리에 낙향하면서 부사공파(府師公派)를 형성하였다. 창원황씨의 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문하부 판문하시중을 역임한 황충준(黃忠俊)이다. 본래 창원황씨의 연원은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진 황병고(黃丙古)이나...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흔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이거 성씨.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는 한란(韓蘭)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군졸을 이끌고 집 앞을 지날 때 종군하여 삼중대광문하태위(三重大匡門下太尉)가 되고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에 녹훈되었다. 예산 지역의 청주한씨 문중 인물로는 효행으로 이름을 널리...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이거 성씨.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왕건(王建)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에 책봉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 시대 문벌귀족 가운데 하나이다. 윤신달과 관련해서는 파평현 용연(龍淵)에 있던 옥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므로 선대의 유래는 알 수 없으...
-
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유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이거 성씨.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시조는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金紫光祿大夫樞密院副使)를 지낸 조춘(趙椿)이다. 조춘은 당시 남송(南宋)에 들어가 금(金)나라를 정벌한 공로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의 선조는 중국에서 귀화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본래...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전오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이거 성씨. 중국 송나라가 멸망하자 송태조의 후손 4형제가 고려로 망명하여 백천, 한양, 풍양, 양주 등에서 각각 시조가 되었다. 480여 년 전에 최초의 족보를 만들 때 4형제 중 둘째인 조지수(趙之壽)가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시조가 되었다. 한양조씨는 예산 입향 후 학자요 청백리인 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