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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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 |
영어공식명칭 | Jeonju 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본관 |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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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전주이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
입향지 | 전주이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
입향지 | 전주이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오추리 |
성씨 시조 | 이한(李翰) |
입향 시조 | 이윤정(李允貞)|이예립(李禮立)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윤정과 이예립 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연원]
조선 왕실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인 이한(李翰)[?~?]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고 문성왕 때 사공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이한의 선대가 언제부터 전주에서 세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후손 중에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인(李隣)과 형인 이의방(李義方) 등은 고려 중앙 정부에 진출해 관직에 있기도 하였다. 그 후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동북면으로 이주하여 살기도 하였고, 후에 이성계가 조선 태조로 즉위하면서 전주이씨는 조선의 왕실이 되었다.
예산군에 입향한 후 전주이씨는 집의 이소생(李紹生),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부사 이광철(李光哲), 목사 이연(李演), 집의 이윤정(李允貞), 충청감사 이덕성(李德成), 감사 이륜(李綸), 대사헌 이만(李曼), 의주부윤 이증(李增), 현감 이예(李例), 대사간 이진수(李鎭洙), 현감 이진국(李鎭國), 감사 이진순(李鎭淳), 현령 이극준(李克俊), 효자 이거충(李巨忠)·이교승(李敎承)·이두상(李斗祥)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백창(高伯昌)의 처 이씨(李氏), 박성장(朴性長)의 처 이씨(李氏), 박수도(朴受度)의 처 이씨(李氏)도 전주이씨 가문이 배출한 효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입향 경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입향한 전주이씨는 이소생(李紹生)과 이효령(李孝榮)의 후손으로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후 대흥으로 들어와 은거하면서 정착하였고, 응봉면에는 이윤정(李允貞)[?~?]이 덕산현감에 부임했던 인연으로 정착하였다. 고덕면 오추리에도 이예립(李禮立)[?~?]이 병자호란 때 피난을 와 정착하였다.
[현황]
2000년 예산군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주이씨는 예산읍 584가구, 삽교읍353가구, 대술면 141가구, 신양면 266가구, 광시면 177가구, 대흥면 86가구, 응봉면 162가구, 덕산면 23가구, 봉산면 86가구, 고덕면 307가구, 신암면 154가구, 오가면 6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예산군내에 6,587여 명의 전주이씨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예산군의 전주이씨 관련 유적으로는 신양면 서계양리에 있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된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을 들 수 있다. 1849년 이철수(李喆洙)가 당시 서계양리에 거주하고 있던 전주이씨 집안의 자녀 교육을 위한 서당으로 건립하였으며, 일산이수정이라는 이름은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9년간의 제주도 귀양에서 풀려난 다음해 이곳을 방문하여 4~5일간 머물면서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썼다고 한다. 일산이수정은 예산에서는 유일한 정자로 신양면 지역의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으며, 개화된 신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었다. 1923년 4월 신양공립보통학교가 일산이수정에서 개교하여 첫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