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선헌십육경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513
한자 月先軒十六景歌
이칭/별칭 월선헌가(月先軒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77(선조 10) - 「월선헌십육경가」 저자 신계영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69(현종 10) - 「월선헌십육경가」 저자 신계영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55(효종 6)연표보기 - 「월선헌십육경가」 집필
배경 지역 오산리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 지도보기
성격 강호가사|연군 가사
작가 신계영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신계영(辛啓榮)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의 주변 경치를 계절에 따라 즐기며 읊은 가사.

[개설]

「월선헌십육경가(月先軒十六景歌)」는 1655년(효종 6) 10월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에서 신계영(辛啓榮)[1577~1669]이 123행 246구로 써 내려간 가사(歌辭) 작품이다. 벼슬길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신계영은 자신의 집인 ‘월선헌(月先軒)’에 기거하면서 열여섯 곳의 자연 풍광을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풀어놓은 전원 시가이다.

신계영은 조선 전기 광해군(光海君)[1575~1641] 때부터 조선 후기 현종(顯宗)[1641~1674] 때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영길(英吉), 호는 선석(仙石)이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잠시 벼슬길에 올랐다가 27세에 아버지를 따라 고향 예산으로 낙향하였다. 1619년(광해 11) 42세에 다시 벼슬살이에 올라 종사관, 속환사(贖還使), 사은사(謝恩使)로 왜(倭)와 청(淸)을 오갔다. 이후 나주목사, 강화유수, 전주부윤을 거치고, 1665년(현종 6) 고향인 예산군 신암에 내려와 한거하며 여러 작품을 썼다. 문집 『선석유고(仙石遺矯)』를 남겼는데, 여기에 가사 작품 「월선헌십육경가」와 시조 16수가 실려 있다. 예산군 신암면 오산리에서 92세에 영면하였고,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에 안장되었다.

[구성]

「월선헌십육경가」의 구성은 서사(序詞), 본사(本詞), 결사(結詞)로 이루어졌다.

[내용]

「월선헌십육경가」의 서사에는 “오산서(烏山西) 외로온 마을이 / 내의 도구(菟裘)로다[예산 서쪽 외로운 마을이 내 사는 곳이로다]”로 시작하여 늙음에 대한 탄식을 노래한다. 본사에서는 고향 주변 열여섯 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계절에 따라 그리며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삶을 그려 낸다. 결사에서는 “이 몸이 이러구롬도 / 역군은(亦君恩)이샷다”라고 하며 임금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의의와 평가]

「월선헌십육경가」는 조선 전기 가사에서 조선 후기 가사로 넘어가는 과정에 지어진 작품이다.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노래하는 것은 전기 가사(前期歌辭)의 주요 내용이었다.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으로 사계절의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짜임도 전기 가사의 주요 형식이었다. 따라서 「월선헌십육경가」는 시기적으로 따지면 후기 가사에 속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은 전기 가사의 형태를 보여 준다. 이러한 특징은 전기 가사가 후기 가사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예산 지역을 중심으로 내포 지역의 특성을 잘 보여 주며,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정극인(丁克仁)[1401~1481]의 「상춘곡(賞春曲)」, 송순(宋純)[1493~1583]의 「면앙정가(俛仰亭歌)」, 정철(鄭澈)[1536~1593]의 「성산별곡(星山別曲)」의 계보를 따르지만 형식·내용·표현의 어느 면에서도 아주 특별한 것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하며, 일부 평자들은 일반 강호가사 정도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신계영「월선헌십육경가」는 새로운 관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전기 강호가사들이 보이는 유희성과 관념성에 치우진 자연이 아니라, 실제 삶의 공간에서 그리는 구체적 자연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생생한 묘사를 후기 가사로 넘어가는 새로운 표현 성과로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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