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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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상대원은 거의 차댈 데가 없을 정도로 도로를 차들이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지석태가 자랄 때만 해도 거의 차가 없었고, 당시에는 체구도 작아서 동네길도 운동장처럼 느껴져서 동네만큼 놀기 좋은 곳도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바로 거기서 동네 친구들이랑 뛰어 노는 게 지석태에게는 제일 큰 재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 곳에서 지석태는 평생 알아야 할 놀이나 게임의 8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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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지석태는 처음 성남을 벗어났다. 지하철로 학교에 통학을 했는데 처음엔 무척 재밌었다. “지하철이라는 게 재밌더라구요. 열차 타는 거 같고. 처음에 대학교 다닐 때 몇 달 간은 재밌었어요. 처음 타보잖아요. 지하철 처음 타는데 재밌었어요. 웃겨요.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게. 마주 보는 게 이상하지만 그때는 모든 게 재밌었어요. 신기하고. 대학생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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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대원은 본래의 느낌이 너무 없어졌다. 상대원은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낡은 도시의 한 지점에 불과하다. 지석태는 그것이 간혹 안타까움으로 다가섬을 느낀다. 안타까움은 그리움으로 전화된다. 그러면 그리움이란 우리의 삶에 무엇일까? 한낱 의고적 취향일 뿐일까? 상대원은 지석태에게는 또한 저만치 밀어두고 싶은, 묻어두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예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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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원 사람들 이야기는 성남시 상대원동 주민들의 구술 생애 자료를 서사물(이야기북)로 재구성한 것으로, 성남문화재단의 ‘우리동네문화공동체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 마르케스가 자신의 자서전에 쓰고 있듯이,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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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원 재개발에 대해서 은근히 집에서도 기대를 하는 것 같아요. 확실한 어떤 정보를 가지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기 사는 사람들에겐 큰 관심거리죠. 재개발하면 과연 우리집은 어떻게 비싸게 팔릴까. 우리는 어떤 이익을 받을까. 그런 기대요. 여기 사람들은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너저분한 느낌을 많이 받잖아요. 요즘은 건물들이 다 많이 올라가 있는데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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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원시장은 혼자서도 다닐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금은 시장 형태가 없어졌지만, 지석태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예전의 상대원시장은 정말 시장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시장터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어렸을 때니까 상대원시장이 그에게는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재래시장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바로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시장이었는데. 지금 상대원시장은 큰 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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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태의 스물 여덟 해 삶은 평범했다. 앞으로도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살아온 스물 여덟 해 중에서 열다섯 해는 상대원에서 보낸 세월이었다. 비슷한 환경을 가진 상대원 주변 지역에서의 삶을 더하면 스물다섯 해를 보낸 셈이었다. 상대원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 대학에 입학하고, 군복무를 하고, 다시 복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그의 삶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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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태의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목수였다. 목수는 정해진 출퇴근이 없었다. 그 당시 그의 집에는 마당이 있었는데, 마당은 아버지가 목공일을 하시는 장소였다. 아버지는 자개장을 만들었다. 조개껍데기 같은 게 붙은 검은 자개장은 당시만 해도 비싸게 팔리는 인기상품이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직접 만드는 자개장은 만들었고 또 손수 판매도 했다. 꽤 잘 나갔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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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지석태의 어머니는 골목길에서 삼형제의 머리를 깎아주셨다. 당시 다른 친구들도 집에서 머리를 깎는 아이들이 많긴 했지만 그의 어머니처럼 집이 아닌 골목길에서 깎아주시던 분은 없었다. 삼형제가 골목에서 나란히 앉아 머리 깎을 차례를 기다리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한데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앉아 있었다. “어렸을 때는 헤어스타일이 되게 우스웠어요. 지금도 어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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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석태는 장난기가 많은 아이였다. 중원초등학교, 그 당시는 중원국민학교였다. 1학년 때 장난이 워낙 심해서 짝꿍이 여섯 번 바뀌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님 말씀에, 짝꿍이 여섯 번인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초반에. 학급이 딱 배치가 되면 짝꿍을 맺어주는데 여섯 번인가 바뀌었다고. 처음에 짝꿍을 붙여줬는데 엄청 괴롭히더래요. 금 그어 놓고. 금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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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학교까지는 먼 거리였다. 아니 초등학생이 걷기에는 먼 거리였다. 지석태에게도 그 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당시 상대원동의 집들은 산에다 대충 막 지어놓은 것들이었다. 산을 규모 있게 깎아놓은 것도 아니고 산의 나무들만 어정쩡하게 베어버리고 그 곳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굴곡진 고개를 몇 개는 넘어야 학교로 갈 수 있었다. 초등학생 걸음으로는 30분 정도 걸렸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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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에나 반푼이가 있고, 말이 어눌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지석태는 같은 동네의 철없던 고등학생 형을 기억한다. 조금은 한심스런 형이었다. “나이가 분명히 많은 형이었는데. 되게 차이 났어요. 키도 컸고. 저희는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형은 고등학생인가 그랬어요. 저희들하고 같이 놀아요. 그 형이 이해가 안 돼요. 수준이 낮은 건지.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