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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182
한자 盆唐區藪內洞地域-誌-食生活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이연복]

전에 일주일 식단은 없이 주식은 밥, 김치, 된장, 고추장인데, 광복 직후에 학교에 가지고 간 도시락에 반찬 대신 깨소금을 가지고 다녔다. 반찬은 여름에 고등어, 굴비를, 겨울에 동태, 북어를 가지고 요리하였다. 그 당시 학교에 가자고 온 아이에게 아침을 굶고 왔을 것 같아 “먹었어도 더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일상식에 소요되는 비용은 자급자족이므로 계산을 할 수가 없었고, 자반고등어 행상들이 다녔으므로 어른이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었으며, 명절 때는 정부에서 금지하는 밀도살로 소나 돼지를 잡아 고기를 나누어 가져갔다. 조리는 어머니나 누이들이 부엌에서 자체에서 생산한 것으로 만들어 먹었다. 쌀은 뒤주나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였고, 채소는 겨울에 움집에 넣어 보관하였으며, 가정마다 메주를 만들어 간장, 된장을 담갔다.

간식으로는 조청이나 엿을 고아 먹었거나 배급 나온 흑설탕을 즐겼고, 손님이 오면 계란을 찌거나 닭을 잡아 대접하기도 하였다. 계절에 따른 음식으로 봄에는 쑥을 넣은 개피떡, 여름에는 수박을 우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수박의 위를 구멍을 뚫어가지고 설탕을 넣은 화채, 겨울에 시루떡을 해서 집집에 돌려 먹었다.

회갑 등 잔칫상에는 고기, 나물, 두부, 떡, 전, 사탕, 약과 등을 올리고, 제삿상에는 고기, 술, 나물 종류, 다식 등을 올렸는데 본인집에서는 북어포를 뒤집어 놓았다.

일상식의 상차림을 보면 전에 모친은 솥뚜껑으로 전을 붙였고, 제사상의 상차림은 홍동백서, 좌포우혜와 같이 엄격하게 지켰다.

술을 가정에서 주조하는 것은 일제 때나 광복 후에 엄격하게 금하고 전매제도여서 본인의 조모는 부뚜막을 파서 술독을 묻거나 뜨물통을 위에 올려놓아 위장하였다. 그러나 수내동에서 술이 안 팔리면 양조장에서 세무서에 제보하여 이 마을의 밀주를 단속하러 나왔다고 한다.

음식을 먹을 때 피하는 것은 본인이 어릴 때 배추꼬리는 먹지 못하게 하고, 임신부에게는 바르게 자른 떡만 먹게 하고 늙은호박을 고아 먹였다. 또한 중앙공원 부근에 옻우물이 있어서 옻이 오르거나 부스럼이 나면 이 우물을 떠서 바르면 신통하게 낳았다.

[이상구]

일제 때는 강제 공출로 쌀을 빼앗겼기 때문에 먹고 살 수가 없어 조를 심어 잡곡으로 주식을 삼았으므로 이 마을을 ‘작은 북간도’라고 불렸으며, 봄에는 보릿고개가 닥쳐 기아에 허덕였다. 전에는 쌀은 벼로 뒤주나 독에 보관하였고, 장독대에 터주가리를 모셨다.

술은 가양주를 담궈서 명절 때 쓰거나 제사 때 올렸다. 그러나 일제 때나 1970년대까지도 양곡 부족으로 밀주를 담그는 것을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였다. 가을에 김장을 해서 무를 말린다든지 무침을 만들어 봄 양식을 대신해서 부식을 준비하였다. 예를 들어 가을에 김장을 하면 보통 여덟 식구쯤 되면 백 포기, 이백 포기를 담그는데 이는 겨울철의 반 양식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손끝의 음식을 즐겼다. 보양을 위한 음식으로 임산부에게 가물치를 잡아 끓여 주었고, 개울에서 송사리를 체로 잡아 마을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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