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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325
한자 -定社功臣趙溫賜與王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오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왕지(王旨)
관련인물 이방원|조온|이문화
발급자 태조
수급자 조온
발급일시 1399년(태조 7년)연표보기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처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135호
문화재 지정일 1992년 7월 28일연표보기

[정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운 정사공신 한천군(漢川君) 조온에게 발급된 왕지(王旨).

[개설]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는 조선 태조 7년(1398)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운 조온[1347∼1417]에게 공전(功田)을 내린 문서이다.

[제작 발급 경위]

제1차 왕자의 난은 정종을 잇는 왕위 계승권을 놓고 태조의 계비인 강씨(康氏)의 소생 방석(芳碩) 일파와 태조의 초비(初妃)인 한씨(韓氏)의 소생 방원(芳遠) 간에 벌어진 권력 다툼이었다. 그 결과 방원 일파가 승리하고, 이 과정에서 공로가 큰 29명에게 공신의 지위가 내려졌다. 공신은 다시 그들의 공헌 정도에 따라 나뉘었는데, 1등 공신이 12명, 2등 공신이 17명이었다.

조온(趙溫)[1347-1417]은 이때 이등 공신에 책봉되었다. 특전과 포상의 내용은 공신녹권(功臣錄券)에 명시되어 있고, 이 왕지는 녹권에 기재된 공전(功田) 150결의 위치와 수확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조온은 이에 앞서 조선 건국 때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 2등에 포상되고 한천군에 책봉된 바 있다. 그는 제2차 왕자의 난 때도 방간(芳幹) 일파의 군사를 몰아낸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포상되고 (한천)부원군에 봉해졌다.

[형태]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에는 왕지의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왕의 인장 3개가 확인된다. 인장의 크기는 11.7㎝×11.7㎝이고, 「왕지(王旨)」,「한천군조온(漢川君趙溫)」및 문말(文末)에 각각 주인(朱印)하였으며,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문서를 발급한 도승지 이문화(李文和)가 서명하였다.

[구성/내용]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의 내용에 따르면, 조온에게 하사된 공전은 양주, 견주, 교하, 개성, 광주, 연안, 이천, 강화, 서원, 마전, 수원 등에 위치한 전답 150결 38부이다.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는 보물 제1135호에 지정되었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정사공신에게 하사하는 공전(功田)의 위치와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고문서로서는 최초로 발견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역사 연구는 물론이며 고문서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