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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606
한자 農民運動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승갑

[정의]

반봉건, 반제국주의 투쟁에 주안점을 둔 농민들의 민족운동. 여기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농민운동을 말한다.

[개관]

조선 후기의 농민운동은 반봉건 사회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봉건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으로 토지 소유와 분배 구조의 모순에 대항하여 토지의 재분배를 주장하였다. 조선 후기 광주부의 농민항쟁은 반외세적인 문제보다는 봉건사회 모순인 삼정문란의 폐단에서 야기된 것이다. 광주지역의 농민들은 한성부에 몰려가 시위를 전개하는 형태였고 근기지역인 관계로 강경 탄압으로 인해 와해된 것이 특징이다.

일제강점기의 농민운동은 일제의 토지 강탈과 식민지 농업정책의 반대투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농민투쟁은 식민지 농업정책의 수탈구조로 전 계층이 몰락하고 소작농층의 노동강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일제 강점의 초기단계 농민투쟁은 경제적 요구에 의한 경제투쟁에서 비롯되었으나 제국주의의 식민지 권력이 개입하면서 정치투쟁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일제하 농업금융자본은 농촌구조상 대지주나 중농층에 편중되었고 상대적으로 금융신용이 빈약한 빈농층은 금융제도권에서 소외된 상태였다. 농촌 내 이중적 농촌금융구조로 인하여 금리 차를 이용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였고 빈농층은 고금리 수탈의 대상으로 부각되면서 절대빈곤의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농촌에서 고리채의 횡행, 재산차압,생산물차압 등의 집행으로 부채농민은 풍흉에 관계없이 파산하여 유리화되었다. 농촌금융의 제도적 모순이 빈농층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일반화되면서 빈농층이 격증하였다. 결과적으로 금융제도권에서 탈락한 빈농층의 증가는 농촌고리대의 수탈대상으로 편입되면서 역으로 고리대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층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일제하 농촌사회인 성남지역도 이런 현상이 자행되어 악화 일로에 있었다.

[전개]

1924년 경기도민들은 생산 수확물로 식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편적으로 추수한 식량은 정월까지 자급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대부분 잡곡으로 대신하였다. 식량 결핍에 대한 보충 방안은 농번기에 출역한다는 약속으로 유력 농가로부터 식량과 금전을 차입하였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제방수축, 농장출역, 기타 품앗이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대다수 성남지역의 농민들은 식사 회수를 줄이고 초근목피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성남지역의 농민투쟁은 자료가 불명확하여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어렵지만 소작료 인하투쟁, 지세불납동맹, 관공서 습격 등으로 전개되었다. 농민들은 일제타도, 치안유지법 철폐, 민족차별 철폐,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획득 등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는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남지역의 농민운동은 3,1만세시위운동, 신간회 운동, 광주수리조합 반대운동, 소작료 인하 투쟁 등으로 일정 부분 굴절되어 나타난다.

1919년 3.1운동은 성남지역에서 무단통치에 반대한 정치투쟁이 결집되어 나타난 대표적인 민중 스스로의 생존권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즉 식민지 무단농정 철폐와 토지 분배, 가혹한 세금의 철폐 등을 요구하는 민중의 의지가 일시에 분출된 것이었다. 성남지역의 만세 시위운동은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한 토지를 상실한 소작농층의 불만이 누적되어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남인들은 1918년 쌀값의 앙등과 농촌경제 피폐로 인해 강압통치에 불만이 누적되었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따라서 성남지역의 농민운동은 이러한 3.1운동의 잠재적 동인과 결합되면서 표출되는 형태로 드러났다.

1920년대 일제가 실시한 산미증식계획은 소작농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경기도의 경우 자작농이 7.9%, 자소작농이 21.9%, 소작농이 70.2%로 나타나는데 성남지역도 이와 유사한 형태였다. 토지 소유의 구조에서 보면 1정보 미만의 영세 농가가 전체의 63.8%를 차지하고 있어 반대로 해석하면 토지 집중이 심각하게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 성남지역의 농민들은 이런 기본적인 모순에 대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한편 부가적으로 일제가 실시한 식민지 농정의 정책에 대한 폐단도 전가되어 고통이 배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의]

기본적으로 성남지역의 농민운동은 생존권 투쟁에 기초하는 것으로 자신이 소작권 이동에 반대하는 투쟁을 개별적으로 전개하는 형태가 주류를 형성하였다. 성남지역에서 전개된 신간회 운동은 농민운동의 일부 지향점에 대한 좌표를 제시하는 형태를 보인다. 즉 농민운동과 연관된 광주 신간회 활동은 농촌지역에 대한 교양강좌 실시, 소작분규에 대한 조사,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폐지운동, 동양척식주식회사 횡포에 대한 저항 등에 초점을 두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남지역의 농민운동은 통일전선적 운동 차원에서 식민지 착취에 반대하면서 적색농민조합 운동 등의 추이에 동조하여 전국적인 농민운동의 흐름과 보조를 같이한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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