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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624
한자 丹垈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면적 0.80㎢
총인구(남, 여) 20,504명[남 10,375명, 여 10,129명]
가구수 7,484가구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에 있는 옛 지명.

[개설]

구의 동북부 위치한 지역으로 남북으로 긴 행정구역을 가진다. 단대자연공원 남쪽의 구릉지에 있어 지형의 기복이 심하며, 동쪽은 중원구 금광동수정구 양지동 그리고 서쪽과 남쪽은 수정구 산성동시흥동에 둘러싸여 있다.

[지명]

탄리(炭里)와 함께 개발 초기 많이 불리어진 곳으로서 단대1동, 단대2동과 은행동(銀杏洞), 중동(中洞)[현 중앙동] 전역 및 신흥2동(新興2洞)의 일부와 성남동의 일부를 지칭하던 지명이다.

일설에는 1973년 시 승격 당시 탄리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려면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의 흙이 붉었으므로 단대골 또는 던데, 단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나, 조선시대 문헌에 단대(丹坮)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근거는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연혁]

조선시대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에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 등을 병합하여 단대리라 칭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창곡을 병합하면서 성남시 단대동이 되었는데 이때 은행정이는 은행동에 편입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9월 25일 지금의 중앙로(구 단대천)를 경계로 북쪽의 단대1동과 남쪽의 단대2동으로 분리되었고, 단대2동은 1980년 8월 중원구 광명로를 경계로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나뉘었다가 1989년 5월 금광1동, 금광2동으로 개칭, 중원구에 편입되었다.

단대1동은 1983년 10월 지금의 단대공원 정상을 경계로 남쪽의 단대1동과 북쪽의 단대4동으로 다시 분동, 1989년 5월 단대1동은 단대동으로 단대4동은 산성동으로 명칭이 각각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취락과 세거성씨]

단대리에는 응달말, 으능쟁이, 논골, 주막거리, 오룡골, 금괭이, 금성골, 웃던데, 아랫던데 등의 마을이 있었다. 응달막은 산의 음지에 있으므로 붙여진 지명이며, 으능쟁이는 현재의 은행동을 있게 해준 마을로서 은행나무를 심은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현재 성남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논골은 다른 마을에 비하여 산에 계단식 논의 경작지가 많기 때문에 붙여졌다. 성씨로는 문화유씨, 파평윤씨, 풍양조씨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룡골은 용(龍) 다섯 마리가 살던 산 아래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금괭이는 금(金)이 채광되었던 광산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금성골은 김씨가 많이 사는 마을 즉 ‘金姓’ 골의 변음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던데’는 붉은 땅 즉, 단대(丹垈)의 변음으로 개울 상류 마을은 ‘웃던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은 ‘아랫던데’로 지명이 붙여졌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03 행정지명 현행화 중동에서 중앙동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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