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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583
한자 -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혜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록유산|회맹축
발급자 20공신
수급자 숙종
발급일시 1694(숙종 20)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처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제335호
문화재 지정일 2021년 2월 17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20공신과 그 자손들이 숙종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회맹문 등을 적은 축.

[개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재집권한 서인이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에 파훈(罷勳)된 5명의 공신을 복훈(復勳)한 것을 계기로 제작된 것이다.

2007년 4월 20일 보물 제15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2월 17일 국보 제 335호로 승격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발급경위]

보사공신은 1680년 복선군을 추대하고 반역을 도모하려던 허견을 제거하는 공을 세운 신하에게 숙종이 내린 훈(勳)이다. 그런데 보사공신 중 2등 공신인 이사명, 김익훈, 조태상, 신범화와 3등 공신인 이광한, 이원성은 1690년 이를 박탈당하였다가 1694년 다시 회복하였는데, 이때 5명의 보사공신의 복훈을 계기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작성되었다.

[형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왕실이나 충훈부(忠勳府)에서 보관할 목적으로 최고의 재질로 거대하게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가로 2,414㎝, 세로 88.5㎝이고, 1축이다.

[구성/내용]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에는 1680년(숙종 6) 8월에 있었던 보사공신회맹 시의 회맹문(會盟文)을 쓰고 회맹에 참여한 본 공신과 자손의 군호, 공신호, 직함, 성명이 기록된 명단을 싣고 있다. 이어서 신병(身病), 재상(在喪), 발병(廢病), 연유(年幼), 변장재외(邊將在外), 피적(被謫) 등 참여하지 못한 명단을 사유별로 수록하였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1694년(甲戌) 6월 20일의「복훈시고종묘제축문(復勳時告宗廟祭祝文)」에 이어‘강희삼십삼년시월일(康熙三十三年十月日)’이라는 년기를 적고 좌편에 세필로 ‘기사파훈신술복훈(己巳罷勳甲戌复勳)’이라 쓴 후 그 위에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날인(捺印)하였다.

[의의와 평가]

전문에 걸쳐 한자 한자에 정성들여 쓴 글씨와 선명한 주사란, 고급 재질, 장대한 크기 등 모든 면에서 조선 후기 기록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현존하는 완전한 상태의 회맹축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 문화재연감(문화재청, 2008)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뉴시스(http://www.newsis.com)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3.04 문화재 승격 국보 제335호 승격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