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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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又鐵 |
영어음역 | Gim U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미질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김우철이 활동하였던 박처사 의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 300여 명을 거느리고 예안과 안동, 진보, 영양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박처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처사는 의진을 결성한 후 대규모 항쟁보다는 소규모로 인원을 나누어 활동하였는데, 특히 부하인 이화서·김문호·권계홍 등은 의병 약 30~40명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자위단 및 영양군 순사주재소 등을 습격하는 과감성을 보여 주었다.
[활동사항]
김우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미질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김우철은 국망의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김우철은 1907년 음력 10월경 박처사 의진에 참여하여 동료 의병 10여 명과 함께 안동 일대를 전전하면서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체포된 김우철은 1908년 9월 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3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