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술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53
한자 牙述縣
영어공식명칭 Asul-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아술현에서 음봉현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940년 - 음봉현에서 인주로 개칭

[정의]

백제시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아술현(牙述縣)은 백제시대 탕정군(湯井郡)에 편제된 행정구역의 하나로, 통일신라 시기인 경덕왕 대 음봉현(陰峯縣)[또는 음잠(陰岑)]으로 개칭되었다. 지금의 아산시 영인면·인주면·둔포면·음봉면·염치면 일대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23 온조왕 43년에 "가을 8월에 왕이 아산 벌판에서 5일 동안 사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권36 잡지5 지리3에는 "탕정군은 본래 백제의 군이었는데, 문무왕 11년 당나라 함형 2년[671년]에 주(州)로 삼고 총관(摠管)을 두었다가 함형 12년[681년]에 주를 폐지하고 군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그대로 썼는데, 지금의 온수군(溫水郡)이다. 영현(領縣)이 둘이다. 음봉[또는 음잠이라고도 함]은 본래 백제 아술현으로 불렸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아주(牙州)이다. 기량현(祁梁縣)은 본래 백제 굴직현(屈直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신창현(新昌縣)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백제시대 아산 지역은 탕정군으로 편제되었는데, 아술현은 그 영현 가운데 하나였다[지금의 아산시 영인면·인주면·둔포면·음봉면·염치면 일대]. 다만 백제는 멸망 시까지 현제(縣制)가 실시되지 않았고, 백제 멸망 이후 당(唐)의 도독부(都督府) 체제하에서 51개 현의 명칭, 신문왕 대의 백제 주·군·현의 명칭, 경덕왕 대에 개편된 103현의 명칭이 확인된다.

백제는 사비기(泗沘期)에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실시하였는데, 성(城)이 현(縣)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성[현]은 지방 지배의 거점으로 독자의 지배 영역을 가지며 방성이나 군에 영속되어 있었다. 전정(田丁)과 호구(戶口)가 성[현]이 될 만한 곳을 가리어 지방통치조직으로 개편하여 이루어졌으며, 하부 단위로는 지방통치의 기본 단위인 촌(村)이 있었다.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성주(城主) 또는 도사(道使)로 불렸다. 백제에는 200~250개의 성[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백제에서 성이 현으로 바뀐 시기를 무왕 대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기록상에서 현의 행정 명칭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변천]

아술현은 757년(경덕왕 16) 음봉현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 인주(仁州)로 고쳤다.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목종 때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는 천안부(天安府)의 속현이 되었으며, 뒤에 아주(牙州)로 이름을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 때 아산현(牙山縣)으로 고쳐 현감을 두었으며, 1459년(세조 5) 현을 없앴다가 뒤에 다시 복구하였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경기도로 소속이 옮겨졌다가 중종 초에 복구되기도 하였는데, 기록이 없어 그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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