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직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54
한자 屈直縣
영어공식명칭 Guljik-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굴직현에서 기량현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940년 - 기량현에서 신창현으로 개칭

[정의]

백제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굴직현(屈直縣)은 백제시대 탕정군(湯井郡)에 편제된 영현(領縣)의 하나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설치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인 경덕왕 대에 기량현(祁梁縣)으로 개칭되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6 잡지5 지리3에는 "탕정군은 본래 백제의 군이었는데, 문무왕 11년 당나라 함형 2년[671년]에 주(州)로 삼고 총관(摠管)을 두었다가 함형 12년[681년]에 주를 폐지하고 군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그대로 썼는데, 지금의 온수군(溫水郡)이다. 영현이 둘이다. 음봉현(陰峯縣)[또는 음잠(陰岑)이라고도 함]은 본래 백제 아술현(牙述縣)으로 불렸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아주(牙州)이다. 기량현(祁梁縣)은 본래 백제 굴직현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신창현(新昌縣)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백제시대 아산 지역은 탕정군으로 편제되었는데, 굴직현은 그 영현의 하나이다. 지금의 아산시 신창면, 선장면, 도고면 일대이다. 그런데 백제는 멸망 시까지 현제(縣制)가 실시되지 않았고, 백제 멸망 이후에 당(唐)의 도독부(都督府) 체제하에서 51개 현의 명칭, 신문왕 대의 백제 주·군·현의 명칭, 경덕왕 대에 개편된 103현의 명칭이 확인된다.

백제는 사비기(泗沘期)에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실시하였는데, 성(城)이 현(縣)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성[현]은 지방 지배의 거점으로 독자의 지배 영역을 가지며 방성이나 군에 영속되어 있었다. 전정(田丁)과 호구(戶口)가 성[현]이 될 만한 곳을 가리어 지방통치조직으로 개편하여 이루어졌으며 하부 단위로는 지방통치의 기본 단위인 촌(村)이 있었다.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성주(城主) 또는 도사(道使)로 불렸다. 백제에는 200~250개의 성[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백제에서 성이 현으로 바뀐 시기를 무왕 대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기록상에서 현의 명칭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변천]

굴직현은 757년(경덕왕 16) 기량현으로 고쳤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 신창현으로 이름을 고쳤고,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의 속현이 되었다. 1391년(공양왕 3) 만호 겸 감무(萬戶兼監務)를 두었으며, 1392년(조선 태조 원년)에 만호를 생략하였다. 1414년(태종 14) 온수(溫水)에 합하여 온창(溫昌)이라고 하였다가, 뒤에 다시 나누어 현감을 두었다. 고종 때 군(郡)으로 개편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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