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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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溫陽郡 |
영어공식명칭 | Onyang-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범 |
[정의]
조선시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 일대와 탕정면, 배방면, 송악면 일부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온양의 온천은 옛날부터 병에 효험이 있기로 유명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200여 리[약 78.5㎞]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실의 일원이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자주 찾았다. 왕의 잦은 온양행은 현(縣)에 불과했던 온양이 군(郡)으로 승격되는 결정적 이유였다. 온양은 행정구역 규모로는 작은 편이었지만, 1442년(세종24) 군으로 승격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아산군지』 등에서 온양군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온양군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5개 진관(鎭管) 중 하나인 홍주진관(洪州鎭管) 소속으로 정4품 군수(郡守)가 파견되었다. 관아의 서쪽으로 온천과 온양행궁이 있었다. 관아가 있는 읍내면을 중심으로 남군내면, 동상면, 동하면, 일북면, 이북면, 서면, 남상면, 남하면 등 9개 면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6동과 탕정면, 배방면, 송악면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변천]
백제시대 탕정군(湯井郡)이었다가 신라 문무왕 때 주(州)로 승격되었다. 뒤에 주를 폐지하고 군으로 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온수군(溫水郡)으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에 속했다. 1414년(태종 14) 신창현(新昌縣)과 합하여 온창현(溫昌縣)이라고 하였으나, 1416년(태종 16) 다시 분리하여 온수현(溫水縣)으로 불렸다. 1442년(세종 24)에 온양(溫陽)으로 고치고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충청우도(忠淸右道)에 속하였다가 1896년(고종 33) 충청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아산군에 병합되면서 온양군이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온양은 예로부터 온천이 유명하여 왕실은 물론 양반과 일반 백성들까지 치료의 목적으로 찾곤 하였다. 따라서 조선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치유, 휴양, 관광이 온양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오늘날 온양 지역이 관광도시로 정체성을 가지고 발전하는 자양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