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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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亂中日記 |
영어공식명칭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제장명 |
저술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난중일기』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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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795년 -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에 삽입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2년 12월 20일 -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국보 제76호 지정 |
성격 | 일기 |
저자 | 이순신 |
권책 | 7권 |
규격 | 1권-25.7㎝[가로]|34.5㎝[세로]///2권-24.7㎝[가로]|27.5㎝[세로]///3권-26.5㎝[가로]|29.0㎝[세로]///4권-26.5㎝[가로]|30.0㎝[세로]///5권-25.0㎝[가로]|28.0㎝[세로]///6권-23.5㎝[가로]|24.2㎝[세로]///7권-23.0㎝[가로]|27.0㎝[세로]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기간 중 진중에서 직접 쓴 일기.
[개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1월 1일부터 1598년(선조 31) 11월 17일까지 7년 동안을 기록한 진중(陣中) 일기이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전쟁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록한 것으로, 매년 단위로 책을 엮어 겉장에는 그 해의 간지(干支)를 붙여서 명명하였다.
일기 형태는 초서체 한문으로 기록된 친필본(親筆本)이며, 이순신 사후(死後) 종가에서 보관하면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난중일기』가 조선 후기에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를 받았기에 조선 22대 왕인 정조는 유실(遺失)을 우려하여 이 친필본을 토대로 활자화하여 1795년(정조 19)에 간행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삽입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충무공전서』에 활자로 삽입된 것을 『난중일기』라고 부른다.
이순신의 친필본 『난중일기』는 일제강점기에도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특히 이 시기 일본 황족으로부터 『난중일기』의 양도 제의를 받았으나 13세 종손인 이종옥(李種玉)이 거절하여 일기를 지켜낸 역사도 가지고 있다.
[저자]
[편찬/간행 경위]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초서체 한문으로 기록한 친필본 일기를 조선 22대 왕인 정조 때 이를 토대로 활자화하여 1795년에 간행한 『이충무공전서』에 삽입하였다. 이때 『이충무공전서』에 활자로 삽입된 것을 전체적으로 『난중일기』라고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1962년 12월 20일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壬辰狀草)를 국보 제76호로 지정하였고, 현재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형태/서지]
『난중일기』 친필본 7권에 대한 세부 형태는 아래와 같다.
1권 「임진일기(壬辰日記)」는 가로 25.7㎝, 세로 34.5㎝로 27매이다. 임진년[1592년] 5월 1일부터 5월 4일까지, 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8월 24일부터 8월 28일까지, 계사년[1593년] 2월 1일부터 3월 22일까지 기록되었다.
2권 「계사일기(癸巳日記)」는 가로 24.7㎝, 세로 27.5㎝로 30매이다. 계사년[1593년(선조 26)]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기록되었다.
3권 「갑오일기(甲午日記)」는 가로 26.5㎝, 세로 29.0㎝로 52매이다. 갑오년[1594년(선조 27)] 1월 1일부터 11월 28일까지 기록되었다.
4권 「병신일기(丙申日記)」는 가로 26.5㎝, 세로 30.0㎝로 41매이다. 병신년[1596년(선조 29)] 1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기록되었다.
5권 「정유일기(丁酉日記)」는 가로 25.0㎝, 세로 28.0㎝로 27매이다. 정유년[1597년(선조 30)] 4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기록되었다.
6권 「속정유일기(續丁酉日記)」는 가로 23.5㎝, 세로 24.2㎝로 20매이다. 정유년[1597년] 8월 4일부터 무술년[1598년] 1월 4일까지 기록되었다.
7권 「무술일기(戊戌日記)」는 가로 23.0㎝, 세로 27.0㎝로 8매이다. 무술년[1598년(선조 31)]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기록되었다.
[구성/내용]
『난중일기』는 원래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乙未日記)」,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1595년(선조 28)의 「을미일기」를 뺀 총 7책이 보존되어 전해오고 있다.
한편 정조 때 발간된 『이충무공전서』[총 14권]에는 제5권부터 제8권까지 『난중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전서본(全書本)에는 있지만 친필본에는 없는 부분은 임진년 정월 초1일부터 4월 22일까지의 부분, 을미년 1년 동안의 부분, 무술년 10월 초8일부터 12일까지의 부분이다.
[의의와 평가]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7년간의 전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책자이다. 특히 『난중일기』를 통하여 당시 해군의 활동상을 통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데에서 사료적 가치는 지대하다. 『난중일기』 속에는 다른 일기류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요와 이순신 개인의 경험 세계가 어우러져 있다. 아울러 엄격한 군중 생활과 국정에 관한 감회, 전투 상황의 묘사, 충성심의 표현, 백성들에 대한 걱정, 부모에 대한 효도, 명나라 내외 요인들의 내왕, 항복한 일본군들에 대한 시각과 활용, 전황의 보고, 기타 개인 신변잡사 등이 담겨져 있다. 그야말로 군 내부 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양한 대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장도 간결하면서 문학적으로 가치도 높아 『난중일기』에 수록된 이순신의 시는 별도의 문학 작품집에 수록된 본인의 시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그리고 서체 또한 매우 아름다워 최상급의 예술품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상황을 알려 주는 기록일 뿐만 아니라 당시 백성들의 생활상과 의식 상태를 알려 주어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더욱이 400여 년 전 당시 해군의 최고 지휘관이 직접 군중의 상황을 기록한 자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아울러 당시 군 내부의 비밀스러운 문제까지 거론함으로써 이 시기의 제반 상황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도 드문 경우이다. 비교하면 당시 전쟁 상황을 기록한 일기 중에는 민간에서의 사회상과 민중의 생활상을 기록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동종의 다른 일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군 관련 내용은 특별하여 다른 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야말로 『난중일기』만이 갖고 있는 독자성이자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