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11
한자 近代敎育
영어공식명칭 Modern Educ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홍구

[정의]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행하여진 근대적 교육 활동.

[개설]

1905년 러일전쟁 개전을 전후하여 한반도에서는 나라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몽론자들은 계몽 단체를 조직하고, 그 활동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특히 서울 지역에 집중되었던 이전의 상황과 달리 이 시기의 계몽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충청남도 지역에는 대한자강회 직산지회, 대한협회의 홍주·은진·정산·부여·직산 지회 등 5개, 기호흥학회의 홍주·목천 지회 등 8개를 비롯하여 총 14개 계몽운동 단체의 지회가 있었다. 이들은 사립학교를 세우거나 야학을 통해 교육계몽운동을 펼치는 한편, 국채보상운동 등을 통해 국권 회복을 직접적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기호흥학회가 주도하여 학교 설립을 적극 추진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898년(고종 35) 시작된 만민공동회 실시 이후 각종 계몽운동 단체들은 근대교육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 당시 계몽운동가들은 지식인 이외의 일반 민중에게도 현실을 자각시키기 위해 여러 사립학교를 설립, 근대식 교육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사립학교와 야학 같은 근대 교육운동을 활발히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공립 보통학교 같은 경우에는 설립 개수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교육의 질도 좋지 않았다. 1905년부터 1910년 8월까지 충청남도 지역에 설립된 사립학교의 개수가 100여 개에 달하였다는 것은 사립학교 활성화의 단적인 예라 볼 수 있다.

당시 전국에 설립된 사립학교 중 아산 지역의 사립학교는 희성학교[둔포], 보성학교[둔포], 일신소학교[아산], 문지사숙[아산의 서쪽], 보성학교[온양], 명륜학교[온양], 신민학교[신창] 등이 있었다. 특히 신창의 신민학교는 단기간에 학생 수가 150여 명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학교에 대한 일반 민중의 수요가 매우 높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학교의 설립자들은 기호흥학회 등과 함께 이 지역 애국계몽운동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야학이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특히 「보통학교령」, 「사립학교령」, 「기부금품모집취체규칙」, 「학회령」 같은 당시의 교육 관련 법령은 사립학교 운영에 있어서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러한 법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충청남도의 야학 운동은 공주군[현재 공주시] 진명야학교 설립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도내에서 32개 야학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중 아산 지역에서 운영된 야학의 경우에는 ‘일어 야학과’라는 이름으로 두 개의 야학이 운영되었는데, 두 야학 모두 관련이 있었다.

사립학교나 야학 외에도 이 당시 근대 교육기관은 개량 서당이나 의숙(義塾)·사숙(私塾)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립학교와 야학 이외의 기관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산 지역에 설립된 근대 교육기관은 더 많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근대교육은 사립학교와 야학 등이 주도가 되어 진행되었다. 실제로 공립 근대교육은 1908년 온양공립보통학교[지금의 온양초등학교] 개교가 최초였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나 야학은 근대교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교육열을 향상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애국계몽운동의 한 축인 교육을 통한 현실에 대한 자각 및 민족의식의 강화와 정체성 확립,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모색 등을 판단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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